갓난아기 엄마들과 보고 싶은 책

<엄마 도감> 권정민 그림책 / 웅진주니어​

by 플롯시

애가 둘일 때까지는 그래도 평범한 엄마의 범주에 들었다. 하지만 애가 셋이 되자 듣는 이마다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 애국자다, 힘들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상투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나는 민망한 마음이 앞서곤 했다.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내가 선택해서 낳고 내가 키우는 것인데, 내가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그저 인사로 하는 말일지라도 괜히 겸연쩍은 마음에 '아니에요'라는 대답만 하곤 했다.


다시 말해, 나는 육아에 아무런 자부심이 없었다. 내가 낳았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 남들도 다 하는 것,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것. 힘든 날이 많았지만 힘든 티를 내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았고, 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엄마들에 비하면 배부른 투정인 것 같았다. 바깥에서 일하는 것보다 아이 보는 게 힘들다는 말도 그저 듣기 좋은 인사치레로만 들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또 축소시켰다.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2~3년은 정말 육아와 살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런 시기를 세 번 보내며 나는 30대를 다 보냈다. 힘들긴 한데 딱히 뭐가 힘들다고 내보이기엔 민망한 것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며 하루를 다 보내고 있다고 드러내 보이기 싫은 것들로 10년이 채워졌다. 나름 긴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 삶을 너무 축소시킨 나머지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분명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는데 컴컴한 동굴 안에서 가만히 엎어져 있던 것만 같았다.


<엄마 도감>은 내가 별거 아니라고 숨겨 두었던, 그러나 나의 10년을 전부 차지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이 책은 갓 태어난 아이가 서너 살이 될 때까지 엄마를 관찰해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엄마 도감'이다. 아이는 엄마의 탄생부터 관찰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


그렇다. 엄마는 그때껏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로 만들어지는 시간도 없었다. 그저 아기의 탄생과 함께 엄마도 태어난 것이었다.


아이는 침대도 되고 비행기도 되고 말도 되는 엄마의 몸을 관찰한다. 엄마의 수면 활동도 관찰한다. 엄마는 앉아서도 엎드려서도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시도 때도 없이 잘 자는 존재다. 배변 활동도 특이하다. 100일 이전까지는 아이가 화장실 안으로 따라가 줘야 하고, 그 이후에는 화장실 문 앞까지 따라가 주어야 한다. 밤중 반응 속도는 치타보다 빠르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현저하게 떨어진다.


엄마는 호기심이 많은 존재다. 아이가 왜 응가를 안 하는지, 왜 우는지, 왜 안 먹는지, 왜 안 자는지, 왜 열이 안 내리는지 궁금하다. 그런 문제들을 싸안고 늘 심각하게 연구 중이다. 엄마는 아이의 취향에도 맞지 않는 아이의 물건을 부지런히 주문하는 존재다.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더니 진짜 못 찾는 곳에 꼭꼭 숨어서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 존재다. 엄마의 엄마가 오면 평소와 달리 밥을 천천히 먹고 아기처럼 잠만 자는 존재다.


이것말고도 엄마에 대한 아이의 날카로운 관찰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킬킬 웃기도 하고 짠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그림을 쳐다보기도 했다. 아 맞다, 이랬었지, 나도 저런 몰골이었지, 저런 걸로 걱정했지... 밤잠 줄여 가며 만든 이유식이 반 그릇 넘게 남아서 버릴 때는 괜히 서글펐다. 볼일을 보면서도 화장실 문 앞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며 되려 재롱을 떨 때는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M을 사야 할까 L을 사야 할까, 크기를 고민하며 이 기저귀 저 기저귀를 클릭할 때는 내가 너무 사소하게 여겨졌다.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여자는 아이를 낳고 키워 왔는데 왜 유독 요즘 엄마들은 육아를 더 힘들어할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요즘은 옛날처럼 어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조카를 돌보던 시대가 아니다.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컴퓨터 앞에서 일하던 육체가 아이를 안고 둘러메고 젖 먹이고 씻기려면 힘든 게 당연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책상 앞에서 공부했던 그 내용들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개인은 각자 소중하고 유일한 가치를 지녔고, 남자든 여자든 그 가치를 발전시켜야 하며, 능력을 키우고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내가 받은 교육의 골자였다. 우리들은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된 순간, 가장 시시하고 지저분한 일들을 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가장 시시하고 지저분한 몰골로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이 의미 있는 일이고,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다른 모든 행복을 뛰어넘는다. 그 당연한 말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사실은 육아가 고귀하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었다'로 결론을 내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작은 존재들 아래서 더 작은 존재로 살아야 하고, 간혹 조금 높아지고 싶어 시도할 때마다 한없는 자책감으로 잠든 아이 옆에서 훌쩍이는 게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아이를 갓 낳은 엄마들과 보고 싶은 이유는 내가 하찮게 여기고 동굴 속에 밀어 넣었던 일들을 이 책은 낱낱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 여전히 뽀대 안 나는 일들이라도 이렇게 자세하게 관찰하고 차곡차곡 쌓고 쭉 이어서 보여줄 수 있구나. 우리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았다고 가감 없이 내어놓을 수 있구나.

작가가 그림으로 그린 엄마는 여전히 둥글한 몸매에 수면바지 차림인데, 그 엄마가 매일 하는 일들도 내가 예전에 했던 일들과 같은데, 책장을 넘기며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허했던 마음이 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그 시절을 한곳에 욱여넣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지 말고, 이제 막 태어난 엄마들이 이렇게 자신을 관찰하고,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힘을 내어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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