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날>을 보고 나는 여름의 한 날을 떠올렸다. 토요일 오후였다. 두 아들은 아직 어렸고,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라 혼자 아이들을 키우던 때였다. 아이들이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토요일은 너무 길었다. 새하얀 모니터를 앞에 두고 글을 써야 할 때처럼, 기나긴 토요일을 시작할 때면 막막했다. 또 아이들과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들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집을 어지르며 노는 동안 나는 밥 먹은 것을 치우거나 빨래를 개거나 한쪽에서 청소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아이들에게 뽀로로나 타요 같은 만화를 틀어 주고 한쪽에서 폰을 만지며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한 시나 두 시쯤 낮잠을 재웠을 것이다. 안 자려는 아이들을 억지로 눕히고, 낮잠을 자야만 이따 나가서 놀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낮잠은 긴 하루를 조금이나마 단축시켜 주는 고마운 낭비였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아이들이 잠들면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으리라. 하지만 자주 그랬듯, 나도 함께 잠들고 말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늘 비슷한 휴일 오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 특별한 외출 계획이 없는 한 이렇게 빈둥대며 휴일의 반을 보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은 낮잠에서 깬 이후였다.
벌써 해가 많이 기울었을 때였다. 해가 긴 여름이라 아직은 밖이 환했지만, 아니, 오히려 밖이 노란빛으로 환해서 늦은 오후임을 알았다. 해가 들지 않는 우리집에 아주 잠깐 노란 햇빛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게 오후 네시에서 다섯 시 사이였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우리는 일어나 멍하게 앉아 있었다. 방금 자고 일어난 아이들의 부스스한 얼굴을 보니 괜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가라앉으려는 감정을 발로 차 버리려는 듯 벌떡 일어나 아이들 옷을 갈아입혔다. 얘들아, 놀이터 가자!
집에서 좀 떨어진 지하철 역 부근 아파트 놀이터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하늘이 흐려지고 회색 구름이 몰려왔다. 주말 오후라 놀이터에는 아빠까지 온 가족이 나온 집이 많았다. 가족끼리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엄마 아빠들은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어울려 놀기도 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다 말다 했다. 네 살 큰아이는 '시원해, 시원해' 바람 속에서 웃었고, 두 살 작은아이는 미끄럼틀로 시소로 열심히 종종 뛰어다녔다. 나는 두 아이를 발로, 눈으로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리고 좀 쓸쓸했다.
남편의 빈자리 때문이었을까, 남의 아파트 놀이터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갑자기 날이 흐려져서 그랬을까. 우리 셋만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던 몇 해 동안 나는 갑작스레 밀어닥치는 고립된 기분을 자주 느꼈다. 쓸쓸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이 자주 찾아왔지만, 나는 그 감정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아이들의 엄마였다. 그럴 때도 아이들을 쫓아다니고, 밥을 차려 주고, 씻기고, 재워야 했다. 셋만 동떨어졌다는 기분은 그 셋 중에도 나만 느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둘 때문에 그 고립감을 홀로 밀어내야 했고, 그 덕분에 우리 셋은 남편 없는 몇 년을 그럭저럭 살았던 것 같다.
<눈 내린 날>의 아이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유치원에도 못 가고 밖에도 나가지 못한다. 멀리 일하러 간 아빠는 눈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해서 오늘 집에 올 수가 없다. 아이와 엄마는 아무데도 못 가고 집에 갇혀 있다. 밖은 춥고,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조용하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만 들린다.
"나랑 엄마밖에 없는 것 같아, 이 세상에."
늦은 밤 눈이 그치고 아이는 엄마와 밖으로 나간다. 아무도 없고 흰 눈만 보이는 세상. 아이는 눈밭 위에 발자국을 찍고, 눈 뭉치를 가지고 눈사람을 만든다. 엄마는 아이의 뒤를 따라 걷는다. 혼자 노는 아이와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 그들은 지금 여기,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이다.
손도 시리고 콧물도 나자 엄마는 내일 다시 놀자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내일, 내일은 새로운 날이다. 아빠가 돌아오는 날이니. 더 이상 눈이 오지 않는 날, 더 이상 둘만 있지 않는 날, 허전했던 구멍이 꽉 채워져 뿌듯한 날이다.
그림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 속에 푹 뒤덮인 느낌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찾아갈 수 없는 고립된 세상에 둘만 함께였다. 밖에 나가서 눈놀이를 하지만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은 여전하다. 꼭 함께 있어야 할, 함께 있어야만 서로가 완전해질 한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놀이터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바람이 좀 더 불고 흩날리는 빗줄기의 양이 늘자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그럴수록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어차피 집까지 거리가 있어 가는 길에 다 젖을 터였다. 나는 아이들을 그냥 두었다. 두터운 구름과 함께 저녁의 기운까지 더해져 주변은 더 어두워졌다. 이제 정말 우리밖에 없구나, 바람과 비와 어둠 속에 우리 셋만 있구나, 우리만 동떨어져있단 느낌이 눈에 훤히 드러난 실재로 보이자 오히려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우리끼리 외롭고 쓸쓸하게 실컷 놀자.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바람과 비를 맞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행히 비가 멈추었다. 주위는 이미 어둑해지고 역 주변의 식당과 상점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붐비는 곳은 빨리 지나쳐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날은 사람들로 가득한 치킨집 앞에서 오븐 베이크 치킨을 주문했다. 아이들과 길가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주문한 치킨을 기다렸다. 큰아이는 집에 가서 오렌지 주스랑 치킨을 먹겠다, 폴리를 보며 먹겠다 종알거렸다. 나는 작은아이의 젖은 머리를 털어 주었다.
시끌벅적한 치킨집에서 일어나 한 손에는 치킨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아이의 손을 잡았다. 큰아이는 내 앞에서 몸을 흔들며 걸었다. 우리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혔다. 우리 세 사람. 낯설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그림이었다.
여름날 주말 저녁,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걷는 엄마와 두 아이. 눈 덮인 밤길을 단둘이 걷는 엄마와 한 아이. 그 두 가족이 닮아 보이는 건 그들을 감싸고 있는 허전함과 쓸쓸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 멀리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는 사라질 수 없는 그것들 때문일 것이다.
그림책 속 아이의 아빠는 다음날 아이의 곁으로 무사히 돌아왔겠지. 나의 남편은 그다음 날은 아니지만 3년 후, 무사히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우리는 떨어지지 않고 살고 있다. 그 시절 자주 느꼈던 쓸쓸함은 이제 돌아보니 내 삶에 존재했던 독특하고 귀중한 감정이었지만, 아마 지나간 감정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보다는 온전하다는 느낌마저 느낄 수 없이 당연한, 같이 있어 꽉 찬 느낌마저 느낄 수 없이 익숙한, 함께 사는 지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