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 왼발>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 비룡소
내가 부모님께 유일하게 효도를 하나 한 게 있다면 아이 셋을 낳은 것이다. 뭐,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효도했다'라고 충분히 착각하게 할 만큼 나의 세 아이만 보면 주름진 얼굴에 행복을 환히 드러내셨다. 요즘은 주로 막내인 손녀딸에게 사랑을 퍼 주고 계시지만, 위의 두 아이가 고만한 나이일 때는 친정과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거의 매일매일 손자들에게 퍼 주셨다.
남편이 큰아이 세 살 때 해외 근무를 나가 일곱 살 때 들어왔으니, 그 사이 아이는 아빠와 할만한 일들을 할아버지와 했다.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가서 처음 축구공을 찼고, 보조 바퀴가 달린 첫 두 발 자전거도 할아버지와 골랐다. 둘째도 할아버지 손을 잡고 바닥 분수 위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고, 두꺼운 목화솜 요 위에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할아버지와 씨름을 했다. 할아버지가 늘 슈퍼마켓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집에는 마이쮸와 여러 가지 젤리들이 넘쳤고, 문방구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포켓몬 카드가 장난감 서랍 한 칸을 꽉 채웠다. 요즘은 슈퍼마켓이나 문방구 대신 손녀딸과 다이소에 정기적으로 가신다.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기한테 무조건 져 주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기에, 할아버지를 너무 따랐다. 늘 할아버지네 가서 자겠다고 졸랐고, 그렇게 가서 자는 날이면 아버지가 씻기고 먹이고 놀아 줬다.(엄마는 전화로 손자들이 자기한테는 잘 안 온다고 푸념했지만, 실은 다행으로 여기시는 게 거의 확실했다.)
그랬기에 <오른발, 왼발>을 읽었을 때 아버지와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비가 할아버지와 블록 쌓기를 할 때는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레고 놀이를 했던 장면이 그려졌고, '오른발, 왼발' 걸음마를 할 때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다 번쩍 안아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둘이 벤치에 앉아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뒷모습에선, 아무것도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냥 가슴이 찡해졌다.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보비의 생일 며칠 후,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석 달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보비를 알아보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쩌다 내는 소리는 괴물 소리 같기만 했다. 날마다 함께 놀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걷던 할아버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보비는 낯설고 무서운 할아버지 모습에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나는 이제 가끔 부모님의 죽음이나 그분들이 병상에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주위에서 그런 소식들이 너무 많이 들리는 나이가 되었기에. 장례식장에 갔을 때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는 건 내 부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히 아버지를 떠올리면 딸의 마음이 아니라 손자의 마음이 되어 슬픔에 빠진다. 아이들에 빙의되어 나랑 놀고 나랑 손잡고 걷고 나를 예뻐해 주던 할아버지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거의 꺼이꺼이 울 지경까지 되고 만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수많은 장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다행히 아직까지 아버지는 건강하시다. 보비의 할아버지도 점점 회복이 되어 보비를 알아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잘 걷지는 못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보비에게 말했다.
"너, 나, 걷자."
보비는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잘 알고 있었지요.
보비는 할아버지 앞에 선 다음, 할아버지가 어깨를 짚고 일어서도록 했습니다.
"좋아요, 할아버지. 오른발."
할아버지는 한 발을 움직였어요.
"이번엔 왼발."
할아버지는 또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보비가 할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작했듯, 이제는 할아버지가 보비의 두 어깨를 짚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치 아기 보비처럼. 자신의 조그많던 손자에게 온몸의 중심을 맡기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자신을 번쩍 안아 무릎에 올리곤 했던 할아버지를 온몸으로 부축하며 걷는 손자의 마음은 또 어떨까. 둘 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안쓰러웠겠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을 것이다.
지난 주말 친정에 갔을 때도 아버지는 손녀딸과 다이소에 갔다 오셨다. 오는 길에는 손자들이 좋아하는 시장표 탕수육도 사 오셨다. 다이소 봉지 안에는 딸내미가 고른 야리꾸리하고 금방 망가질 것 같은 장난감들이 한가득이었다. 아이가 그것들을 신나게 쏟아 놓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혀를 찼고, 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내 무표정이다가 애들만 오면 표정이 확 변해."
옆에서 쳐다보던 엄마의 말씀. 그렇다. 아버지가 원래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다. 고집도 세고, 외골수 같은 데가 있어 교회 사람들 말고는 왕래하는 친구들도 없으시다. 딸한테도 미주알고주알 말씀하는 성격이 아니고 나도 애교라고는 일도 없는 딸이라, 지금도 애들 없이 아버지랑 둘만 있으면 데면데면하기도 하다. 오직 아버지의 밝고 신나고 귀여울 정도로 수다스러운 모습은 손자들 앞에서만 볼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 사 온 실로 할아버지와 손녀가 실뜨기를 한다. 아이는 실뜨기가 아직 서툴러 손가락을 여기 넣었다 저기 넣었다, 아주 심각한 얼굴이다. 할아버지는 손가락에 실을 꿴 채 손녀를 바라보고 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입꼬리는 손녀를 볼 때면 늘 그렇듯 양쪽으로 부드럽게 올라가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내 기억 속 아주 오래되고 소중한 장면 하나를 소환한다.
나는 이모네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옆에는 아버지와 이모가 앉아 있었는데, 이모는 나랑 이런저런 말장난을 하다 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유, 형부 눈 좀 봐. 아주 사랑이 뚝뚝 떨어지네."
나는 아버지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예뻐 죽겠다는 그 눈빛, 사랑사랑사랑이 물결처럼 흘러나오던 그 얼굴. 놀면서도 안 보는 듯 옆눈으로 그 얼굴을 살짝 보며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랑받고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던 순간. 짧은 순간이었고, 그 뒤로는 그처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없었지만, 깊은 곳에 각인된 그 한 장면 덕분에 나는 늘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예쁨 받는 사람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를 생각할 때 아이들의 마음처럼 되는 건 '어린 시절의 나'가 내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늘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던 존재를 잃기 싫은 마음.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나를 사랑해 주었고, 어린 손자와 손녀를 사랑해 주고 있다. 아마도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것이고, 점점 성장할 손자 손녀를 계속 사랑해 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말한 '효도'라는 건 애당초 내세울 데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셨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는 그 사랑을 좀 더 오래도록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