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 Nov 21. 2016

✔︎ 영남알프스에서의 일몰

(The sunset at Yeongnam Alps)








영남알프스에서의 일몰





이제, 떠나가려나 봅니다.



뚝 떨어진 기온, 버틸 수 없는 붉은 색깔의 무게, 인연따라 흘러가는 저 만큼의 세월, 늦가을은 그렇게 인연길을 따라 내 앞에 서있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그 세월은 이미 허공虛空 속에 머물러 있고, 나는 아련히 흘러온 세월 속의 인연길을 따라, 걸어온 세월 만큼의 주저함으로, 지금 여기에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보이는가.


하찮은 목숨하나 허공에 걸고, 검붉은 빛 서산西山에 드리우며 점점 멀어져 가는 네 모습……


붉게 드리워진 영남알프스의 일몰을 보며 아름답고도 슬프게 다가온 석양이 가슴에서 울컥 합니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머리를 숙인 채 말없이 돌아섭니다.





돌아서는 발길에 영남알프스는 점점 나를 깊은 밤으로 몰아 갑니다.


모두가 지난 꿈이겠지요.


네가 떠나가니 세상은 캄캄해지고, 침잠沈潛하는 영남알프스의 어둠 속에서 세월은 나즈막히 나를 토닥입니다.





“아쉬워 하지 마라.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란다.


세월 속의 인연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야.


허공 속에 머무는 꿈같은 것이니, 결코 돌아보지 마라.


지금 이 순간 만이 오직 너를 위한 것이야.”





그렇게 투벅투벅 돌아 내려온 영남알프스의 밤은 더욱 깊어 갑니다.





안녕,


그런 세월이여 ~


그런 인연이여 ~


그런 사랑이여 ~


그런 네 모습이여 ~


그런 내 모습이여 ~






W161121P161120




몇 주째 영남알프스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며 나를 못가게 막습니다. 지난 밤엔 머리맡에 핸폰을 두고 잠들었지만, 눈 앞이 훤한 듯 하여 깜짝놀라 일어나니 오전8:20분이었습니다. 컴퓨터로 작업할 것이 있어 새벽 2시경 잠자리에 들다보니, 5시에 기상벨을 맞춰 놓았으나 그 소리를 못듣고 깊이 잠들었던 것입니다.


그래, 늦으면 어떤가 하고 후다닥 샤워를 마치자 마자 길을 나섭니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작천정酌川亭에 내리니 12:10입니다. 여기서 유일한 304번 버스로 5.1Km를 가야 출발점인 등억알프스가 나오지만, 버스가 한 시간 간격이라 언제 올지 몰라 그냥 걷기 시작합니다.


걸어가는 도중, 304번 버스가 지나 가길래 손을 흔들었지만 기사는 안 중에도 없는 듯 그냥 휭 ~ 달려가고 맙니다.


그래 걸어가자. 어짜피 걸으려 나오지 않았던가.


걷노라니 주변 풍광이 여유로움으로 다가옵니다. 휭~ 하고 가버린 기사님이 고마웠습니다. 기사님 덕분에 늦가을 풍경의 주변을 충분히 만끽하며 등억알프스에 도착하니 13:30이었고, 오랜만에 와보니 주변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영남알프스 산악문화센터 건물, 국제클라이밍센터 건물도 새로이 크게 잘 지어져 있습니다.


비상용 헤드랜턴이 등가방에 언제나 들어 있으니 늦으면 혼자서라도 밤산행하면 되는 것이고, 가져간 삼각김밥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고 무작정 올라갑니다. 올라가노라니 늦가을의 영남알프스를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온 산행객들이 대부분 하산 중이었고, 하산시간에 나름의 높은 산을 올라가는 내 모습이 걱정스러운지 오르는 내내 몇몇 분들이 ‘이제 올라가 어디로 가세요’하고 물으며 걱정을 해주니, 사람의 인정이 느껴졌습니다.


홍류폭포를 지나 칼바위능선으로 향하며 울산에서 온 진정한 산사나이를 만났고 오늘의 친구가 되어 함께 올라갑니다. 오늘 신불산에서 일박을 하려고 26Kg이나 되는 80리터 백팩킹을 하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칼바위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습니다.


칼바위에서 신불재와 간월재를 바라보니, 이미 저멀리 신불평원 쪽에는 석양의 붉은 빛이 보입니다. 신불산 칼바위능선은 아슬아슬한 능선길에서 고소공포증Acrophobia만 없다면, 일반산행객들도 릿지Ridge하기 좋은 곳이라, 둘이서 즐거운 마음으로 릿지를 즐기며 올라갑니다. 새로이 고무창으로 수선한 한바그신발이 바위에서 착착 달라붙으니 비브람창의 불안함에서 벗어나 릿지하는 기분이 너무나 편안하고 좋습니다.


신불산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4:50, 이미 영남알프스 능선 전체가 농무濃霧와 먹구름으로 덮혀 있으며, 세상이 어두워져 가는 일몰의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둘이서 올라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담은 후 또 기회가 되면 보자며 작별의 악수를 나누자마자 나는 바로 신불평원에서 가천마을로 하산합니다.


신불평원 데크Deck에는 몇몇 4~50대 남녀산행객들이 편안하게 앉아 술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넓고 높은 평원에서 석양시간에 술을 나누며 늦은 시간까지 영남알프스의 풍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보기가 좋아 석양에 역광으로 몇 컷 담았습니다. 나보다도 더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로구나 하고 하산했습니다.


열심히 걸어내려 오노라니, 세상은 캄캄하고, 무덤을 지나니 귀신이 소복素服을 입고 춤추고 있고 ㅎㅎㅎ, 어둠 속에서 나는 세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한밤중에 설악산길을 혼자서 많이 걸어다녀본 사람이라 산에서 홀로 산행하는 것은 그 어떤 걱정도 겁도 없고 편안합니다. 야생멧돼지만 신경쓴다면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귀신이란 원래 없으니까요.!!! 무덤에 엎드려 자라고 해도 나는 서슴없이 누울 수 있습니다.


산기슭에서 내려오니 붉은 등불이 여러개 켜져 있습니다. 가져간 물이 모자라 갈증이 많이 났기에 다가가니 조그만 사찰이라 노크를 하려 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등불이 예뻐 사진으로 담아 걸어걸어 내려오다 오늘 충청도 청남대에 도보여행을 떠난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니 아직도 버스로 내려오고 있다 합니다. 12월 초에 최근에 개방된 법기수원지를 친구들과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합니다.


오후 7:10에서야 겨우 가천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습니다.무려 7시간을 쉬지않고 걸었더니 발바닥에서는 불이 나고 고관절에서는 열이 납니다. ㅎㅎㅎ


캄캄한 시골의 정류소에 앉아 이십 여분 기다리니 12번 버스가 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9시가 훨씬 넘었습니다.


짧지 않은 대중교통시간, 집에서 영남알프스 초입까지 무려 왕복 6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하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고 오늘도 영남 알프스로 향합니다.


아름다운 네 곁으로…








► My blog - blog.daum.net/4hoo      ► My KaStory - //story.kakao.com/hu-story#

작가의 이전글 ✔︎ 너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