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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푸 Jul 08. 2020

해냈다와 할 수 있다는 다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붉은 하늘을 보며 천천히 길을 나선다.

오늘은 5km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아침을 먹어야겠다. 날이 더할수록 다리가 내 마음 같지 않다. 발을 뗄 때마다 오른쪽 발등이 아려온다. 두 시간을 넘게 걸었는데 마을은 나오지 않는다. 두 시간을 걸어도 5km가 안됐다니. 앞으로 20km는 더 걸어야 하는데.. 여덟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고?


 정말 때려치우고 싶었다. 난 또 이렇게 포기를 하겠구나, 발을 걷고 있지만 머리에는 자괴감이 가득 찼다. 겨우 도착한 첫 번째 마을에서 지도를 다시 보니 맙소사. 8.5km나 왔다. 3분의 1이나 아침도 안 먹고 걸었던 거였다. 나를 자책하며 걸었던 두 시간이 나에 대한 대견함으로 바뀌었다.



 순례길 후반부로 갈수록, 노래를 들으며 걸을 여유도 생겼다. 자연을 눈 앞에 두고 걷다 보면 귀는 가사에 집중하게 된다. 어느 날은 한 노래 가사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차올랐다.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 너의 모든 눈물 닦아주고 싶어
어서 와요 그대 매일 기다려요 나 웃을게요 많이 그대를 위해 많이
우효(OOHYO)_민들레


 노래 속 '그대'가 나였다. 그대를 위해, 곧 나를 위해 많이 웃고 사랑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한 선택들이 남과 비교해 평가되는 게 싫었다.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미련 없이 떠나온 게 아니었을까.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플레이리스트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가끔 산책을 하며 그때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 나를 위해 걸었던 순례길의 순간들이 아른거린다.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엄마 혹은 친구를 위한 선물만 샀었다. 오늘은 특별히 나를 위한 선물을 샀다. 파란색의 까미노 팔찌. 이 2유로짜리 팔찌가 마음에 쏙 들어서 1분을 걷다가 팔을 걷어서 팔찌 한번 보고, 걷다가 또 팔찌 한번 보고를 반복하며 행복해했다. 팔찌 때문인지,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오늘의 발걸음은 유독 가볍다.


 마지막 코스는 풍경이 예쁘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거진 숲도, 쭉 뻗은 도로도 내 눈엔 멋지기만 했다. 중간에 부슬비가 내려도 '이 길도 내가 떠나는 게 아쉬운가 보다' 생각하며 힘차게 걸었다. 몬떼 데 고소에 들어서니 순례길 첫날처럼 먹구름이 새하얀 뭉게구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점심도 거르고 멀리 보이는 콤포스텔라 성당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성취,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무엇이었다.

할 수 있다와 해냈다는 다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대다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험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는가. 누군가에겐 짧은 여정이었대도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말하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첫째 날만 해도 내가 이 길을 왜 걷기로 했는지, 굳이 왜.. 지난날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발톱이 뽑히고 피가 났다. 날이 더할수록 이 정도면 충분한데 왜 끝까지 걷기로 한 건지 후회했고, 절반이 지나도 절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더 암담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자신이 가진 체력도, 환경도, 능력도 모두가 다름에도, 이 정도는 '당연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지 않았다.


 해냈다. 나도 무언갈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별 거 아닐지라도 나에겐 별 거였던 순례길을 걸어내고 말았다.

이 길의 끝에 도착하니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불평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쇠한 노인은 때때로 자리에 멈춰가며 걷고, 다리를 다친 사람은 지팡이로 절뚝이며 걸었다. 각자가 가진 환경에 순응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걷는다. 속도도, 방법도 어떻게 걸어야 한다는 정답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못하는 내가 유난으로 느껴지곤 했다. 대다수가 말하는 잘하는 기준에 들지 못하는 나를 볼 때면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라고 꾸짖곤 했다. 경쟁이 싫다면서 뒤쳐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나는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순례길에선 더디더라도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걷고 힘들면 잠깐 쉬는 것을 뒤쳐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힘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것도 당연했다. 평평한 길만 있었더라면 사람들은 이 길을 걸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순례길은 내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나의 인생이었다. 나는 한참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길바닥에 앉아 눈물을 삼켰다.



 나는 다시 마드리드로 향한다.

오랜만에 기차에 오르니, 오 년 전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에서 아빠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기차 안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소시지와 매쉬드 포테이토를 먹었다. 그 간단한 요리가 그렇게 맛있었다. 맛있어서 조금씩 깨작이며 아껴 먹었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맛있으면 더 시키면 되는데 그 돈이 아까워서 참기를 택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매번 무엇이 너의 욕구를 잠재웠을까. 참는 법만 길러왔을까.

 생각해보면 돈을 안 써서 크게 아쉬웠던 적은 없다. 교통비를 아끼는 대신 걸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고, 비싼 음식을 참는 대신 싸고 배부르게 먹었던 음식이 있고, 관광지를 입장하는 대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사소하고 작은 돈에 허덕였던 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을 하거나 먹지 않아도 행복한 게 나였다. 무언갈 반드시 해야만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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