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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Jul 17. 2020

떠나온 것이 도망인가, 용기인가

Adiós Madrid

며칠 전부터 마드리드를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이 밝고 동네를 걸으면서 나는 분명 마드리드에 다시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작별이 더 이상 아쉽지만은 않았다.


점심은 TGB 버거를 맛있게 먹고 Collon 쪽 현대 갤러리를 봤다.  오랜만에 현대 작품을 보니 괜스레 심오해진다. 갤러리에서 나와 이름 모를 광장에 앉았다. 이 년 전 스페인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딜 가든 소지했던 여행 수첩을 꺼낸다. 바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바쁘지 않게 한참을 무언갈 끄적였다. 


굳이 남의 경험을 따라 하지 않고, 나의 감을 따랐을 때 그것은 온전한 나의 행복이 됐다. 사실 남들이 하라고 해서 한 선택들은 그저 그럴 때가 많았다. 굳이 좋은 점을 꼽자면, 궁금증이 해소됐다는 정도? 반면 내가 선택한 길과 장소, 음식들은 남에 의해 검증되지 않았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별로면 별로인 대로 좋았고, 좋으면 몇 배로 더 기뻐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의 경험을 토대로 따라가다 보면 실패할 확률은 줄어든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저 길이지만 굳이 방향을 바꿀 용기는 내지 않는다. 정해진 길이 주는 안정감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은 결국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목적지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걷고 싶은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느낌은 사뭇 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기 때문이다. 길을 걷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어차피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그 자리에 있으니, 어떤 길을 택하는 것에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조각 케이크를 대접에 주고, 포크 대신 작은 수저를 주는 마드리드의 카페


작은 구멍가게에서 이 동네의 엽서를 샀다. 그리고 내가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녁은 순례길에서 만난 미경언니와 로컬 식당에서 뽈뽀와 샹그리아를 먹었다. 밤이 되자 다시금 아쉬운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마드리드의 밤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이 순간을 눈에 담았다. 다시 돌아올 그날까지 마드리드에서 안온한 하루들을 그리워하겠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날들은 내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교환학생 시절,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여행하는 또래들을 보면서 부러워한 기억이 있다. 통장의 잔고가 점점 0에 가까워지는 걸 두 눈으로 보며 하루하루 쪼달리는 나와는 대조되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모은 자잘한 돈으로 자잘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었다. 돈은 이렇게 쓰는 거였다. 선택은 이렇게 하는 거였다. 삶은 이렇게 사는 거였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여행의 이유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고, 지금 이 여행조차 한국에 돌아간 뒤에야 이유를 알게 되겠지.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이 의미 없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떠나기 전엔 '내가 이래도 되는 나이인가?' 불안함이 컸다. 하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확신이 생겼다. 지금 이래도 되는 나이가 언제인지 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지금 이 나이에 떠나는 것'이었다. 취준생에게 여행이라는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평가로 정의될지 몰라도, 자신에게만큼은 확신이 있었다. 떠나고 보니 살면서 이만큼 잘한 선택도 없다고 느낄 만큼 사랑하는 것만 보고 느꼈던 시간이다. 두려웠지만 나를 마주하고 싶었고,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용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용기였지만 큰 동력이 됐다. 미래만 보며 벌벌 떨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걷고 있는 거다.



지금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조금 졸리는구나.


작별이 아쉽다.

아쉽지 않으려 해도, 몇 년은 다시 이 곳의 공기를, 하늘을, 거리를 그리워해야 할 것을 알기에 서운하기만 하다. 왕궁 너머로 오늘의 해가 장렬하게 지고 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이곳이 많이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데.

모든 순간이 그리울 걸 안다.

여행의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고 싶은 대로 지냈다. 반면 나란 존재도, 인생도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잊고 산다. 마치 이 고통이 무한하기라도 한 듯 삶을 버거워했다.

스페인에 잠시 살면서, 하고 싶은 선택을 해도 인생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오히려 현재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미래에 잘 살기 위해, 미래에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지금의 희생을 견디는  당연하게 여겼다. 견디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천억 개의 인생이 있고, 수천억 개의 길이 있다. 자신이 걸은 길만을 정답이라 여기는, 두려움 가득한 사람들의 말에 내 인생을 결정하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 맞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오직 나만이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었다. 나는 나와 잘 살아보고 싶다. 부족한 게 많지만 조금씩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나아가고 싶다.


이 곳에 돌아온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분명 다시 올 수 있겠지? 그때까지 나로 잘 살아가자. 끝이 있는 이 삶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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