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자취방, 하지만 그 어느 자취방보다 깨끗했다 자부할 수 있다. 일주일에 3번씩 빨래 돌리고,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도 했다. 종량제봉투도 가장 작은 크기를 사용했다. 내 소중한 자취방에 생활 쓰레기 쌓이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화장실도 건식 화장실처럼 늘 뽀송했고, 물건 수납도 잘 돼있었다. 휴일에는 알코올스왑으로 손잡이를 닦으며 뿌듯하게 한 주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자취 2년 차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1년 차 때 공들이고 힘들어하던 집안일이 제법 손에 익으며 간간히 요리도 했다. (물론 진짜 맛없었지만… 아니 어떻게 김치볶음밥마저 맛이 없을 수 있지?) 집에 친구들 데려오는 것도 자제하며 나만의 공간을 잘 지켜나갔다.
자취 3년 차
드디어 집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인턴을 시작하며 집이 지저분해졌던 것 같다 … 퇴근하고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서 눕기 바빴다. 그래도 일상복을 입고 침대에 눕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바닥에 누웠으면 누웠지, 깨끗하고 보송한 이불만큼은 사수해야 했다.
자취 4년 차
이불 사수? 그게 뭔가. 본격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집이 난장판이 됐다. 분리수거 쓰레기가 현관 입구에 쌓이는 건 이제 심각한 일이 아녔다. 빨래 돌릴 시간도 없어서 기본티를 여러 장 사서 돌려 입었다. 주말에 겨우 한 번에 모든 빨래를 돌렸다(색깔 있는 옷과 같이 돌리다가 흰 옷 여러 벌 버렸다 ㅜㅜ). 이때 깨달았다. 깔끔하게 살기 위해선 굉장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자취 5년 차 ~
이제 마음을 내려놓았다. 사실 이 글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보다가 ‘아유 저거 언제 다 치우지’ 생각하다 쓴 거다.
사실 자취 하기 전에는, 집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이렇게 많은 지 몰랐다. 예컨대 화장실 수챗구멍 아래를 들어 배수구까지 청소해야 한다거나, 세탁기 세제통을 드러내 내부까지 꼼꼼히 닦아야 빨래에 냄새가 안 난다거나, 싱크대를 쓰지 않을 때도 한 번씩 닦아줘야 찌든 냄새가 나지 않는다거나 … 나중에 엄마한테 전화하며 얘기를 하니 ‘당연한 거지~ 근데 모를 수 있어 ‘라며 하셨는데, 오히려 좀 머쓱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나름 청소도 잘하고 집안일 잘 도와드리는 자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했던 것 겉치레뿐이었다.
심지어 요리하기 귀찮아 배달을 시켜도, 용기를 정리하거나 남은 음식을 처리해야 했다. 그냥 집에서 있는 것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처럼, 숨만 쉬어도 챙겨야 할 게 집안일이었다. 한동안은 나중에 자취방을 옮기더라도 크기를 넓히고 싶단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집이 커지면 일도 늘어날 테니까). 원래 게으른 편은 아닌데, 집안일은 정말이지 게으름과는 차원이 다른 소소한 ’ 생존‘의 영역이었다.
사실 오늘 집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서 브런치에 이러고 있는 거다. 해가 지기 전엔 집을 치워야 하는데 -냉장고도 주기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는 걸 자취 3년 차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집안 둘러보다 냉장고와 눈이 마주쳐서 말해본다- 오늘 안에는 시작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원래 집안일이라는 걸 미루고 미루다가 해야 또 그 뿌듯함이 배가 된다(?) 어쨌거나, 조금만 더 빈둥대다가 집을 치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