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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06. 2020

인턴 생존기 '쭈굴방탱'

02. 누가 그런 실수를 해? 예, 제가 합니다

  

누가 그런 실수를 해?

  처음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힘들었던 점들을 꼽아보라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선뜻 말하기 쉽지만은 않다. 그 당시에는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손에 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있다. 회사에 들어와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이자, 상대방에게 너무나도 죄송한 실수. 인턴 2개월 차에 저지른 실수였다.



예, 제가 합니다

  최근 많은 언론사들이 유튜브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기사를 쓰고, 그 내용을 토대로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서는 기사도 쓰고 영상도 만들어야 한다. 나와 같은 인턴들은 주로 영상 편집을 하는데, 종종 기사 발제를 해 기사도 쓰고 영상 편집도 한다. 기사에서 영상 제작까지는 보통 하루~하루 반 정도 걸린다. 얼핏 보기에는 넉넉해 보이지만 그 안에 기사 거리를 찾아 구성하고, 기사를 완성하고, 전화 인터뷰를 따고 또다시 영상 소스를 찾아 편집하고 후보정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생각하면 결코 많은 시간은 아니다. 


   그날도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영상은 70% 정도 완성되었는데, 아직 인터뷰가 없었다. 이럴 경우 선배나 같은 팀원이 대신 인터뷰를 구해준다. 하지만 모두가 바쁘다면?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내가 해야 한다. 유달리 그런 날이 있다. 일이 꼬일 대로 꼬이는 날.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드린 전문가, 교수님 모두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보통 3~5분에게 전화를 드리면 적절한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데 우선 전화 자체가 부재중이었다. 


  '일단 전화 인터뷰는 마지막으로 미루자!'

  급한 마음에 다시 자리로 돌아와 발등에 불이 떨어져라 편집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까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수많은 전문가 중 한 분 일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다시 인터뷰용 전화부스(소음이 적어 인터뷰 녹취를 위해 이용하는 공간)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라는 것. 내가 전화를 돌렸던 수많은 전문가 중 누구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누구냐고 여쭙기 죄송한데, 아마 B교수님이겠지 지역 번호를 보니까?' 


  나는 이렇게 위험한 추측을 뒤로한 채 인터뷰에 들어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누구신지 여쭙거나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당장의 문제 처리에 급급했던 어리석은 인턴은 그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만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차라리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돌아와 번호를 검색이라도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미처 거기까지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 사고를 쳤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B 교수님!"


  순간 수화기 너머에 정적이 느껴졌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사고 쳤구나.


 "B교수요?"


  차라리 처음부터 양해를 구하고 여쭤볼걸, 아니 그냥 번호를 한 분씩 저장해가면서 인터뷰 대상을 찾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명단 정리 잘해놓을 걸... 속으로 수십 가지 후회의 말들이 떠올랐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죄송합니다', '정말 실례했습니다'라는 말들의 반복뿐이었다. 결국 교수님은 화가 많이 나신 상태로 나의 이름, 소속 회사, 직급(인턴)을 물으셨다. 기사가 올라오면 본인에게 꼭 링크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전화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사과문의 정석'이라는 글을 찾을 수 있다. 모 대기업 회장이 쓴 사과문에서 파생된 반성문 잘 쓰는 팁 같은 글인데 다음날 출근 하자마자 해당 글을 검색했다. 그리고 열심히 나의 상황을 대입하며 문자에 적어내려 갔다. 말미에 기사 링크와 함께. 교수님께서는 '수고하셨다'는 답을 주셨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죄송했다. 본인의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했는데 다른 교수로 착각하고 있었다니.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이후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는 무조건 번호를 노트에도 적고 휴대폰에도 저장을 한 뒤 전화를 거는 버릇이 생겼다. 이전에는 노트에 적고 표시만 했었는데 그게 헷갈리는 순간 위와 같은 실수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참 어리석은 실수일 것이다. 물론 스스로가 보기에도 참 부끄러운 실수다. 실수하고, 틀리면서 배운다지만 앞으로 이런 종류의 실수, 타인에게 '실례'를 끼치는 실수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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