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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08. 2020

인턴 외전: 도둑놈, 너는 성격이 좀 급해

잘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대하여

  최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 흥이 많은 성격이거니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혼자서 종종 코인 노래방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오히려 답답함만 쌓여갔다. 실력이 흥을 못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들어도 너무 못 불렀다. 차라리 시원하게 지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소심한 성격 탓에 노래방에서조차 큰 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풀러 갔다가 오히려 더 얻어오는 꼴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노래를 한 번 배워보기로. 더 이상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퇴근 이후 꼬박꼬박 학원에 갔다. 수업을 마치면 또다시 노래방에 갔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퇴근하고 시간을 내서 노래방에 갔다. 회사까지 다니는 취준생이 미쳤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또는 책을 읽는다. 그것처럼 소소한 취미라고 해두자.


  처음에는 형편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돈을 버리는 기분이었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 20년을 엉망진창, 제 멋대로 불렀던 실력이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조바심이 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마땅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 항상 좋은 결과만 바랐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도둑놈 심보를 버리'라고 하셨다. 여하튼 이번에도 그 도둑놈 심보가 발동한 것이다. 코인 노래방에 넣는 지폐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 '도둑놈 심보'는 더욱 커져갔다.


  그런데 이 '도둑놈 심보'라는 게 참 위험하다. 얼마 전에서야 그걸 깨달았다. 노래를 할 때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성대가 열린 채로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났을까. 드디어 성대가 잘 붙는다는 말을 들었다. 사소한 칭찬이지만 얼떨떨했다. 실력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틈에, 코인 노래방에 투자했던 시간만큼 아주 미세하게 좋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욕심은 많고 끈기는 부족한데 성격이 급하다. 도둑놈 심보가 생기기 딱 좋은 성격이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데 그만큼의 노력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 것은 아니라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으면 금세 의욕을 잃어버린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거는 많은데 잘하는 게 없어'라든지 '다들 재능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나는 뭘 타고 난거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생각에 매몰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법도 잊어버린다. 그저 입만 살아서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일만 벌여놓고 제대로 하는 건 없는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한 착각은 학창 시절부터 나를 좀먹어 결국 지금까지 와 버렸다. 내 성격 그 어딘가 느껴지는 '쭈굴방탱'의 출처도 바로 이 '도둑놈 심보'다. 


  영어 회화를 잘하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많은 외화와 외신을 접했을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피나는 연습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며 일머리가 좋은 사람은 수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무턱대고 욕심만 냈으니 서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간혹 있다 해도 그것이야 말로 타고난 재능이거나, 혹은 재능을 갈고닦았던 수 없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요즘 들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욕심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위축이 되기도 했다. 나의 장점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뛰어난 점, 장점이 먼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 노력 없이 결과부터 얻고 싶다는 얍삽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이라 넉넉하게 기다리고 묵묵하게 힘을 들이는 성격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열심히 납땜을 해서 그릇을 늘리면 될까? 글쎄, 그러다 그릇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속의 그릇을 좀 여러 개 만들어 둘까 한다. 경험을 하고 배움을 받을 때마다 그에 맞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미리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게 좀 아쉽기는 해도 나름 겪은 일들에 꼭 맞는 틀을 마련할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인턴을 끝마치는 5월. 마음의 그릇이 몇 개 정도 생겨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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