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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09. 2020

졸린 대신 잠이 온다

졸린다 보다 조금 더 확실한 표현인 것 같아

  동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동선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확진자가 방문한 카페에서 30초 거리에 우리 집이 있다. 선배한테 말씀드리니 2주 동안 재택근무를 하라셨다. 질본이나 보건소에서 자가 격리 연락이 오지는 않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나만 걸린다면 조금 덜 조심해도 괜찮겠지만, 내가 옮길 수도 있으니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 결과, 주말 제외 재택근무 3일 차.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 집에만 있으니 조금 짬이 날 때마다 잠이 쏟아져 힘들다. 그러다 깨달은 사실, '잠 온다'는 말은 굉장히 현상 반영을 잘 한 표현이라는 것.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잠이 온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졸린다'는 말 대신 '잠 온다'는 말을 자주 썼다. 


  오히려 자주 쓸 때는 몰랐다. 잠이 왜 온다고 표현하는 것인지, 그냥 오니까 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정적인 시간을 보내게 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잠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온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잤어도 나를 찾아와 두드린다. 

  '나 왔는데, 눈꺼풀 좀 붙여보지 않을래?'라며


  '졸린다'는 말을 자주 쓰는 친구들은 '잠 온다'를 듣고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우선 자주 쓰는 표현도 아닌 데다가, 잠이 발이 달려서 걸어오는 것도 아닌데 왜 오는 것이냐고. 심지어는 오글거린다고 진저리를 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고요 속의 잠을 느껴보니 잠 온다는 참 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졸린다는 내가 선택적으로 잘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잠 온다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잠식되는 느낌이다. 조금 잔머리를 쓰자면 변명하기에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잠'이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점심시간이 마칠 때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여전히 나는 잠이 온다. 오는 잠을 쫓아 버리기 위해 글을 썼지만 어째 잠에 취해 횡설수설 말만 늘어놓은 기분이다.


  역시 잠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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