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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23. 2020

봄을 바라봄

  가끔 노래를 듣다 보면 어쩜 저런 생각을 할까 싶은 가사들이 있다. 잘 짜인 멜로디 위에 한 편의 이야기를 불어넣는 노랫말은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동시에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는 재미를 만족시켜 준다.


  요즘 날씨가 풀려 봄에 관한 노래를 많이 듣는다. 그중에는 이제 막 고개를 내민 꽃송이에 관한 곡도 있고,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에 관한 노래도 있으며 만개한 벚꽃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공통점은 어떤 가사를 접하든 간에 따뜻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포근한 봄바람과는 반대로 봄비는 조금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봄비가 내려야 비로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온다 지만, 꽃이 미처 피어나기도 전에 내리는 비들로 인해서 여린 꽃잎들이 모두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아, 주말에 또 비 온대'


  오늘도 친구와 함께 연락을 주고받다 한탄처럼 내뱉은 말이다. 요 근래 날씨가 좋다 했더니 주말에 비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꽃놀이는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그렇지만 예쁘게 핀 꽃들을 오가며 구경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도 마찬가지였다. 꽃놀이를 가볼까 했던 날에 비가 내렸다. 아쉽지만 내년에도 꽃이 피니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또 코로나 때문에 꽃을 제대로 못 보게 생겼다. 그리고 보러 가지 않는 것이 맞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나 유달리 꽃을 좋아하는 내게 아쉬운 마음만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화단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도 좋아했고 길을 가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집의 화분들도 좋아했다. 자연스레 피어있는 큰 나무의 꽃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들 보기 좋은 것을 선호한다지만 나는 유달리 꽃을 좋아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어릴 적 나의 눈을 스치고 갔던 한 장면 때문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 벚꽃나무 동산이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에 벚나무 동산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그때 나무에서 꽃잎들이 정말 눈처럼 쏟아졌다.


  생물의 소생을 본다 해서 '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 그런 것이었을까. 그때의 장면과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눈앞을 가득 가린 꽃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무도 없는 동산의 적막함을 뚫고 들어오던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 그야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흔한 봄비 대신 더 흔한 봄바람이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제대로 꽃을 보지 못한 봄을 아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말이다. 어쩌면 어리고 작았기 때문에 그때의 장면이 더욱 인상 깊게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날씨가 좋아도, 꽃이 펴도 완연한 봄이 왔다고 말하기 힘든 요즘이다. 다시 그때의 장면을 보지 못해도 좋고 봄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좋으니 하루빨리 봄 다운 봄을 즐기고 많은 사람들이 시름을 덜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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