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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pr 24. 2020

글로 해장하기

요즘따라 숙취가 심하다

  예전에는 즐거워서 글을 썼다.

  얼마 전까지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요즘은 먹고살 길을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솔직히 말하면 '써내야 하는' 글들에 조금 신물이 난 상태다. 주어진 형식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답답하고 사소한 단어 하나의 어감 차이를 짚어내는 것이 벅차다. 아무리 인턴에 불과하다지만 나에게 주어진 기사는 잘 소화해내고 싶다. 또한 아무리 취준생이라지만 입사를 위한 논술문과 작문도 잘 쓰고 싶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머리와 손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적는 것도 부담이 됐다. 한 문장을 쓰기도 채 완성하기도 전에 마음에 들지 않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리기 부지기수였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힌 글거리는 늘어나는데 브런치는 4월의 어느 날에 멈춰있었다. 예전처럼 재미있고 부담 없이 글을 쓰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았다. 글의 중심 맥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표현이 매끄럽지 않으면 어떡하지. 재미가 없으면 글을 지워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술에 취한 다음 날처럼 관자놀이가 묵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이 답답함을 게워내고 싶기 때문이다. 한창때 숙취를 술로 풀어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술을 술로 푼다는 것은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것과 다시 한번 마주한다는 것이다. 부딪혀보고 싶었다. 부담이 된다고 해서 피하기만 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피드백을 받고 퇴고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입사용 논술, 작문들. 누가 봐도 습작의 티가 나는 기사들. 끝내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브런치의 글들까지 말이다.


  오늘만큼은 글을 쓰며 가지는 부담감을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실패한 듯하다. 술로 숙취를 해장하는 것과, 글로 속을 게워내는 데는 차이가 있나 보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순전한 즐거움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날까지 미우나 고우나, 계속 이 꽉막힌 글자 놀이를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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