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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Jun 09. 2020

노년까지 살아보기

오랜만에 잡은 키보드

  자란다는 것은 단순함에서 복잡함을 거쳐 비로소 간결해지는 과정이다.

  어린아이의 하루 일과는 인간의 전체 생애 주기 중에서 가장 단순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떼를 쓰면 된다. 그러다 정신적으로 즐거운 자극을 받으면 예쁘게 웃으면 그만이다. 아마 살면서 이때만큼 원초적인 감정의 표현이 허락되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인생을 시작한다. 어린이집 원‘생’, 유치원‘생’, 초등학교 학‘생’처럼 생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는 또래 사회 내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티를 낼 수는 있지만 무턱대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다가는 자칫 눈총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사회적인 눈치를 보게 된다. 슬슬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 의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해도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신 역시 상대방을 똑같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융화되기 위해 애쓰던 학창 시절을 지나면, 다시 개성을 강조하는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 획일화된 삶을 살아야 했던 ‘생’들은 이제 사회의 ‘미생’이 되어 개성이 있으면서도 남들과 잘 어우러지는 복합형 인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제 삶이 한층 더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조직 융화형 기업 인재가 되어야 하고 퇴근 후에는 워라밸을 좇아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고,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이제 현실적인 고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족, 결혼, 대출, 집, 차. 어감만으로도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는 단어들이 인생을 장식한다. 아름답기보다는 먼지가 쌓여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버릴 수 없는 장식품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어찌 시간은 흐른다. 눈썹 휘날리듯 청년기를 거쳐, 장년이 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말이다. 기혼이라면 장성한 자식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미혼이라면 제법 자신의 삶을 꾸려놨을 시기인 것이다. 슬슬 새벽잠도 사라지고 나이와 인생의 속도가 꽤나 동일하게 간다. 인생의 푸근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시기다. 때로는 허탈하기도 하다. 젊은 시절 이를 물고 사느라 빠져버린 머리칼들이 듬성하니 나있으나, 당시 나를 짓누르던 고민이 무엇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공허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일어나 마시는 미지근한 물 한잔에 미처 씻겨 내려가지 못한 젊은 시절의 먼지가 밀려 내려가는 듯하다.   

  어느덧 자다가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임을 깨닫는 때. 철없던 젊은 시절, 입버릇처럼 ‘나는 자다가 편히 죽고 싶다’ 외쳤던 말들이 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죽고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지만, 이만큼이나 이분법적이고 간결한 문제도 없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 언제나 그랬듯, 가장 어려운 것이 끝맺음이다. 너무 초라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떠르르하지도 않게 인생을 마치고 싶은 것은 노년의 욕심일까. 손에 쥔 것도 많고 쥘 것도 많았던 예전과 달리, 오직 마지막만을 바라보고 하루를 보내기에 오늘도 호상만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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