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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r 18. 2020

인턴 생존기 '쭈굴방탱'

05.생일의 눈물밥

  5월 18일. 인턴 종료까지 딱 두 달이 남았다. 지금쯤 그동안 어땠는지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씩씩하게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울컥했던 날이 많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날도 꽤 있었다. 그중 한 번은 선배 앞에서 울어서 정말 민망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많이 울었던 만큼 그 이유도 다양했다. 억울하게 욕을 먹은 게 속상해서, 생각보다 일머리가 없는 게 답답해서,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알게 된 나의 부족함들이 부끄러워서. 욕심은 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등등. 사실 울었던 일들만 한 편씩 써도 인턴 생존기를 족히 다섯 편은 더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 풀어내기에는 너무 민망하기도 하고, 읽기에도 지루할 것 같아 그중 몇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오늘은 시간이 흘러 취직을 하고 나서도 잊을 수 없을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날은 말 그대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름 사회인이 되고 나서 맞는 첫 생일이었다. 자정이 되자마자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애정이 가득 담긴 연락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아침에도 가뿐하게 눈이 떠졌다. 괜히 신이 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속이 좀 불편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는 종종 빈 속이 메슥거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결국 일이 났다. 전날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속이 뜨끔했다. 가뜩이나 사람들로 가득한 1호선, 그 틈을 비집고 내려 화장실로 향했다. 모든 것을 게워내고 결국 10분 정도 지각을 했다. 하필 영상 편집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시간이 급해 눈치가 보였다. 한편으로는 '아픈 건 내 탓이 아닌데'라며 괜히 서럽기도 했다.


  몸은 안 좋고, 하루의 시작은 꼬여버린 것만 같고. 속상했다. 그날따라 영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배들이 신경 써서 준비한 기사라 끝내주게 영상 편집을 하고 싶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막도, 효과음도, 소스 영상도 만족스러운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서러움과 속상함이 가득 쌓여갔다. 그래도 생일인데 일이 이렇게 안 풀리나.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일 뭔 대수라고 그렇게까지 하루 종일을 속상했나 싶다. 나름 사회인이 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 기대했는데, 돌이켜보면 아직 사고방식은 학생 때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생일은 생일이고, 일은 일인데 말이다. 결국 그날 야근을 하게 됐다. 나 때문에 퇴근을 못하고 있는 사수 선배를 볼 낯이 없었다. 괜히 잘해보겠다는 욕심을 부려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았다. 그때 들려오는 부장님의 한 마디.


  "000 씨는 오늘 10분 늦었으니까, 30분 늦게 가면 되겠네"


  농담 반, 진담 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에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하루 종일 기분이 저기압이었던 탓에 더 그랬다. 그 말에 할 말이 없어 그저 웃을 뿐이었다.


  모두가 퇴근을 하고 편집을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여기서 울면 진짜 웃기는 거다'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어 봤지만 계속 눈앞이 흐려졌다. 결국 두세 번을 화장실에 가 휴지로 눈을 찍어댔다. 그 틈에도 누가 볼세라 빠른 걸음으로 거의 경보를 했다. 부끄러워라.


  겨우 진정이 되고 자리에 돌아와 남은 편집을 마쳤다. 렌더링(영상 편집의 마지막 과정으로 조각난 영상들을 하나의 영상으로 이어 붙이는 과정,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시간이다)을 하고 있는데 사수 선배가 저 멀리서 나를 불렀다.


  "00아 오늘 생일이라며~ 약속 없으면 저녁 사줄게"


  아 잘 참았었는데, 저 한 마디에 커다란 모니터로 얼굴을 가렸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선배는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밥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별안간 후배가 울어버리니. 어찌 저찌 상황을 수습하고 일도 끝내고 같이 건물을 나오며 조심스레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울어서 놀라셨죠, 죄송해요"

  "아냐 아냐 근데 왜 울었던 거야?"

  "사실은 저도 이제 여기 온 지 어느 정도 지났는데, 실력은 그대로인 것 같고 더 잘하고 싶은데..."


  구구절절. 그동안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일을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하필 오늘이라 더 속상했나 보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지극히 어리고 사적인 고민들을 털어놓들 동안 선배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을 덧붙여 위로를 해주었는데 그 시간이 참 감사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선배는 본인을 굉장히 무뚝뚝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날의 선배는 누구보다 세심했다. 굳이 화려한 말이 아니라도 잠깐의 침묵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던 시간이 감사했고, 따뜻한 생일밥 한 끼가 소중했다. 덧붙여 장난스레 말하던 '너 이렇게 보내면 자취방에서 혼자 울 것 같더라고~'라는 말까지.


  지금은 팀이 바뀌어 선배와 함께 일을 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선배를 볼 때면 종종 그날이 생각난다. 이제 매년 생일이 되면, 그리고 또다시 입사를 해서 사회 초년생이 되면 올해 초의 춥지만 따뜻했던 나의 생일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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