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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Feb 24. 2022

면접, 어디까지 망해봤니?

이런, 개생기

“특보입니다(3초 정적). 현재 ㅊ충남, 보령 대천 앞바다에서 엡베ㅔ벱ㅂ….”

어디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는 이 문장. 놀랍게도 면접장에서 나왔습니다. 발화자는 바로 ‘저’였고요. 생애 첫 카메라 테스트(면접의 한 종류)를 시원하게 말아먹었습니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 1년에 퇴사 2번 한 사람의 면접 후기… 가 아닌 <생존기>입니다.  아, 개생기는 개복치 생존일기의 줄임말이고요.




‘나 기자 할래’. PD일 때려치우겠노라 결심한 지 한 달 차. 1시간 남짓한 시간에 1500자 분량의 글을 쓰고, 사회 전반에 걸친 시사상식을 묻는다는 언론고시의 첫 관문. 1차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8부 능선’이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시험. 필기에 합격했다. PD를 준비할 때는 그렇게도 높던 합격의 문턱이 사회에서 한바탕 구르고 오니 조금 낮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전혀, 한 달짜리 중고 초시생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10분 드릴 테니까, 기사 작성하시고 들어가서 읽으세요”

보통 카메라 테스트는, 주어진 원고를 카메라 앞에서 잘 읽으면 된다. 정확한 발음과 탄탄한 발성 여유 있는 시선 처리가 핵심.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즉흥 과제가 주어졌다. 제시된 상황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손에는 제시문과 텅 빈 A4용지가 들려있었다. 일단 의자를 빼서 앉았다. 어쩌겠나, 일단 쓰고 봐야지.


10분. 학생들에게는 달콤한 쉬는 시간, 자취생에게는 라면을 3번 끓일 시간, 수험생에게는 OMR카드 마킹을 끝내고 검수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고작 기사 몇 줄을 작성했다.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듯 뉴스룸으로 들어갔다. 마이크가 주어졌다. ’ 저기 가서 서세요’. 저기란, 카메라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위치를 잡아놓은 곳이었다. 양손으로 종이를 꼭 쥐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읽으세요’.


“수험번호 00번, 000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 시작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카메라 테스트의 시작. 큰 실수 없이 마쳤다. 다만, 끝음에서 목이 갈라지는 게 아쉬웠을 뿐. 이어 앵커 멘트, 단신 등 주어진 원고를 읽었다. 어렴풋이 ‘잘하네?’라고 속삭이는 면접관들의 목소리가 들릴 무렵. 진정한 게임이 시작됐다.


이때부터였어요, 망하기 시작한 게.


“특보, 그러니까 긴급 상황을 제시해드릴 겁니다. 2분 동안 앵커 멘트를 치세요”

특정 상황 고작 한 줄 제시됐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부풀리고 늘려서 생방송 뉴스 2분을 채우는 즉흥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멘트 말고 그냥 나를 치고 싶었다. 차라리 기절하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방송에서 2초 이상 제스처가 없는 것은 사고다. 일단 입을 움직였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2분 간의 발화. 제대로 말한 건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뿐. 말이 꼬일수록 면접관들의 표정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째 그 눈빛이 익숙하더라니, 대학 시절 원고지 반절을 통으로 비워둔 내 답지를 보던 교수님을 닮아있었다.


옹알이 수준의 특보 미션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역량 면접. 면접관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유, 긴장 많이 하셨나 봐요. 괜찮아요” 라며 분위기를 풀었다. 때마침 나사도 함께 풀려버린 나. 말실수까지 했다. “특보를 말아먹어서요…” 아차차, 평소 언어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고 뒤늦게 수습을 해보려 했으나… “그래서 면접이라도 후회 없이 보고 가겠습니다” … 때로는 침묵이 금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역량 면접, 말 그대로 이 사람이 기자의 자질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단계다. 평소라면 그럴듯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질문들. 문제는 ‘특보 미션’에서 이미 개복치가 터졌다는 것이다. 개복치도 터지고, 입도 터져버렸다. 보통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내뱉고 생각을 했다. 대답보다는 스스로의 말에 대한 수습에 가까웠다. 이쯤 되니 그냥 ‘대화나 하다 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성 면접, 질문 몇 마디로 내 인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있더라. 날카로운 질문들이 허점을 콕콕 파고들었다. 이럴 때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만이 돌파구. 입도 터지고 멘털도 터진 개복치는 이른바 ‘노빠꾸’ 정신으로 면접에 임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궁지에 몰리면 개복치도 개(강한) 복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원하게 헛소리를 내뱉었다. 어느덧 마지막, 면접관이 물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안 하고 가면 후회할 것 같은 말이 있냐는 질문.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나답게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숨 한 번 들이키고, ‘아직 서툴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놈이다~’라고 외쳤다. 양심 없게도, 못한 건 알지만 예쁘게 봐달란 말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면접관의 표정과 함께 생애 첫 카메라 테스트와 대면 면접이 끝났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요, 시험 많이 어려웠죠?”

대기실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표정에 얼이 빠져있었나 보다. 감독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달래듯 질문이 들어왔다. 애써 웃었다. 수험표를 떼서 반납하면서 ‘아 … 저거 다시 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 힘들 것 같다. 그렇게 개복치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필기 통과는 꿈만 같았다. 실기 전형은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독한 현실이라 카페에 앉아 면접 복기를 했다. 그렇게 도출한 결론. 오늘의 문제는 ‘특보 미션’이 아니었다. 준비가 덜 된 나의 미숙함이 원인이었다. 아직은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게 서툴고, 흔들린 멘털을 되잡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심적 안정감이 들 만큼 공부도 덜 된 상태였다. 허술한 초시생한테 산들, 바람이 불었고 그냥 쓰러져버린 것이다.


개복치 vs취준. 승자는 취준일 수밖에. 그럼에도 오늘의 이야기가 <생존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까닭은,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작 면접 망한 이야기로 사회적 결론을 도출해내거나 누군가에게 특별한 인사이트를 전달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당장 살아남는 것도 좋지만, 마냥 능사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오늘의 개복치가 나중에 개(강한) 복치가 되도록 도와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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