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인생 설계도
멋들어진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에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참 드물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고 있자면, 종종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을 쓰다 보면 글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로 의도와 다르게 자아를 가지는 듯하다.
<인생설계 1> K대학교에 입학해야지!
인생 첫 번째 수능을 마치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망했다’였다. 그해 유독 1교시 국어 영역이 어려웠다. 이어진 2교시에서 겨우 멘털을 잡았지만 3교시 영어 영역에서 모든 게 무너졌다. 부감독관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이렇게 연하게 마킹하면 정답으로 인식 안 될 텐데?’. 말인즉슨, 답안지에 표시한 답안이 전산에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앞선 과목들도 똑같이 마킹을 했는데 인식이 안 된다면 어찌하나. 순간 ‘멘붕’이 왔다. 지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만히 앉아 그대로 얼어버렸다. 몇 분 정도 흘렀을까. 부감독관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아니다, 그 정도면 되겠다’
재수 시절, 상반기는 이른바 독재(독학 재수)를 했다. 새벽같이 구립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8시쯤 도착하면 고시생 한 둘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한 두 명과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며 혼자 공부했다. 함께 등교를 하던 친구도 없었고 쉬는 시간에 문제를 물어볼 선생님도 없었다. 점심 종이 치면 급식실로 뛰어갈 필요도 없었다.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면 됐다. 그렇게 PMP 속 선생님의 인강을 듣고 모의고사를 풀면 하루가 끝났다.
재수학원에서의 하반기를 보내고 다시 찾은 수능 시험장. 고3 때 보다 성적은 올랐지만 여전히 목표했던 학교에 가기는 부족한 점수였다. 그래도 논술 시험을 그럭저럭 본 덕에 다른 K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50 정도는 바람대로 이뤄진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간에 K는 맞았으니 말이다.
+) 00과만 아니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라고 외쳐댔지만 결국 00과에 진학하게 됐다.
<인생설계 2> PD가 될 거야!
애초에는 드라마 PD를 꿈꿨다. 하지만 취준생의 입장에서 한 우물만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선 그 업계에 가까이라도 가자! 는 생각에 직군 상관없이 PD 모집 공고에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뉴미디어에까지 몸을 담그게 됐다. 비록 반년도 안되어서 때려치우고 나왔지만. 이후 교양 콘텐츠 제작 PD로도 잠깐 일을 했었다. 지금은 자원봉사로 라디오 PD 겸 DJ도 하고 있다.
얼추 PD가 하는 일은 다 해봤다. PD라는 이름이 붙은 명함도 벌써 3개를 갖고 있다. 물론 드라마 빼고.
이번에도 50 정도 이뤄진 것일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이렇게 빨리 퇴사를 할 생각은 없었거니와 한 해에만 두 번의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닥친 순간, 최선이라 생각됐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취직을 했고 제일 먼저 퇴사자가 됐다. 그리고 지금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으로 돌아왔다.
+) 그리고 지금은 PD가 아닌 다른 아예 직업을 준비 중이다. 보나 마나 PD가 천직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말이다!
<인생설계 3> 글로 인정받고 싶어!
감히 출판 작가까지 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조금 욕심이 나기도 하지만, 몇 번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보니 몸을 사리게 됐다. 일단은 인생 과업인 취업부터 해결하고 생각해야겠지. 그러나 요즘 자꾸만 자판에 손이 간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날에도 글이 쓰고 싶다. 소재는 쥐어짜다 보면 하나는 나오기 마련,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어디든 올리는 그 순간이 하루 중 제일 뿌듯한 때다.
에세이, 소설, 시… 강점으로 삼거나 특화시키고 싶은 분야가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강점을 개발하기에 폭넓은 장르의 글을 많이 써 본 것도 아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용기를 내어 공모전에 글을 내기 시작했다. 3년째 떨어지고 있는 에세이 공모전에 다시 한 편의 글을 냈고 태어나 처음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해 신인 작가 공모전에 제출했다.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그러니 <인생설계 3>은 결과를 이야기 하기 참 애매하다.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앞선 설계들은 어느 정도는 맞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다.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설계는 과연 어떤 길을 보여줄까. 적당히 무뎌졌지만 적당한 열정도 남아있는 오늘의 하루는 과연 무엇을 위한 디딤돌이 될지 여전히 알 수는 없다.
+) 이 글이 또 뭔가를 위한 빌드업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