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개생기_02
“전공과목보다 샌드위치를 더 잘 아는 사람”(관계자 A 씨)
“빵을 쌀 때 손이 가장 재빠른 친구”(지인 B 씨)
“수업은 째도 알바는 하던 언니”(지인 C 씨)
네, 접니다. 학교 수업 빼먹기 일쑤. 지각보다는 결석이 낫지 않냐며 자체 휴강 때리고 결국 처참한 학점으로 졸업한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00 이를 만나려면 강의실보다는 가게를 찾아가라” 대학 시절, 인턴을 하기 전까지 약 4년 동안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캠퍼스의 꽃향기보다는 대형 오븐의 이스트 냄새가 더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자, 인사하는 순간부터 카운트가 들어갑니다. 준비되시면 바로 시작해주세요!”
후… 심호흡 한 번
손에 낀 비닐장갑 끝을 다시 한번 단단히 당겨 손가락을 밀어 넣고
배에 힘 한 번 주고 외쳐보자
“어서 오세요, 써브웨이입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미소와 공허한 눈을 장착한 채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때 눈에 띈 한 장의 공고문.
<빵 빨리 싸기 대회>
1등 상품: 캐나다 샌드위치 워크숍 지원
“사장님, 저거 뭐예요?”
써브웨이에서 매장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대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 캐나다 유학이라는 어마어마한 상품을 걸고 전국적으로 개최됐던 대규모의 행사였다.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권역별 예선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한 가게에서 출전할 수 있는 사람은 2명뿐.
‘아, 저거 당연히 내가 나가야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지원했던 대회. 그러나 대회가 다가올수록 누구보다 진심이 되어 갔다. 짬이 찰대로 찼던 고인 물 아르바이트생은 그날 이후 가게에 남아서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깔끔하게 샌드위치를 싸는 법을 연습했다. 사장님께 포장 비법까지 전수받아가며. 강북 지점 우승자는 반드시 우리 가게에서 나와야 했고 그 우승자는 나여야 했다. 고인물의 자존심이었다.
드디어 다가온 결전의 날. 룰은 간단했다. 포스기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 카운트가 시작되고 신속 정확하게 샌드위치를 만들면 됐다. 다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일련의 과정을 수행해야 했다는 점이 조금… 부끄러웠다.
“여기서 대기해주세요”
점점 가까워지는 차례. 명동 성당 지점(당시 대회 개최 지점) 아르바이트생의 손에 이끌려 대기줄에 섰다. 그런데 뒤에서 보는 대회 현장이 꽤나 가관이었다. 해당 지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총동원되어 재고를 채워 넣고 있었고, 참가자들은 정신없이 샌드위치를 만들다 재료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1분이 넘으면 자동 탈락. 설사 1분 내에 완성했더라도 이내 다음 출전자에게 순위를 내주고 말았다.
‘아, 이 정도면 당연히 내가 이기겠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저 광경은 10분 뒤 나의 모습이란 걸.
막상 포스기 앞에 서니 손에 땀이 났다. 지켜보는 사람도 많다 보니 눈 둘 곳도 애매했다. 그래도 기세에서 눌리면 안 된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비닐장갑을 손목까지 당겨 잡았다. 배에 힘 한 번 주고 외쳤다. 나의 시작을.
“어서 오세요, 써브웨입니다!”
1. 빵 자르기
삐끗. 30cm짜리 화이트 빵을 반으로 잘라 칼집을 내다 그만 날이 삐끗했다. 빵칼이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초반 페이스가 흔들린 것이다. 괜찮다 여기까지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유닛으로 넘어갔다.
2. 고기 + 채소 넣기
후드득. 양상추 넣기부터 망했다. 호달달… 손이 떨렸다. 양상추를 넣어야 하는데 후추처럼 뿌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떨다 오이도 놓쳤다. 데구루루…. 다시 다른 오이를 집어 들고 넣었지만, ‘저 친구 망했네’라는 무언의 흐름이 긴장으로 한껏 솟은 승모근을 콕콕 찌르고 들어왔다. 토마토 3개, 피망 3조각, 절임채소 3조각… 써브웨이 국룩 333을 겨우 지키고 2단계를 마무리했다.
3. 소스 뿌리기
와, 다 끝나간다. 드디어 소스! 소스도 3줄 뿌리는 것이 원칙이다. 끊어지지 않게, 동시에 적절한 양으로 소스를 뿌렸다. 샌드위치 제조 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망하지 않은 단계였다.
4. 포장
대망의 포장!! 핵심은 포장지 분리다. 써브웨이 포장지는 생각보다 얇고 미끄럽다. 두 장이 겹쳐져 있을 경우 떼기가 쉽지 않다. 요령껏 포장지를 치는(?) 마음으로 양 손바닥으로 밀어서 때야 그나마 분리가 잘 된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포장지를 치는 순간, 그만 포장지가 구겨졌다. ㅎㅎ… 완성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테이프를 붙이고 카운트 시계를 봤다.
“1분 1초”
탈락이었다. 강북의 고인물은 그렇게 장렬히 떨어졌다.
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다양한 손님들을 봤고 많은 동료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다. 사람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올리브 많이 달랬다고 여러 개 넣어줬더니 대뜸 기분이 나쁘다고 신경질을 내던 사람도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날 달래주던 감사한 손님도 있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대충 설거지를 하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건, 인생에 다양한 장르가 있었다는 걸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도 좋지만 종종 예능도 있었단 걸 잊지 않고 살고 싶었다.
개복치가 개(강)한 복치가 되려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의 장르를 변주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도움이 됐다. 청승맞게 울면서 끝도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리얼 휴먼 다큐멘터리를 찍다가도 ‘빵 빨리 싸기 대회 출전’ 같은 이벤트를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하더라.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하라고들 한다. 하지만 굳이 통찰력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장르 개척도 제법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