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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pr 16. 2022

하찮은 조절기

이런, 개생기_03

 이런 개생…


  최근 하찮은 분노가 잦아졌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언짢았고, 나쁘면 나쁜대로 화가 났다. SNS 알림은 성가시지만 알림 창이 조용해도 내심 신경 쓰였다. 그러다 괜히 앞에 있는 커피만 신경질적으로 마시기 일쑤.


  요즘 인성에 문제가 생겼다.


다음은 개복치가 생존을 위해 쌓아 둔 빅데이터를 통한 자가 진단 과정이다.


01. 개복치 생존전략 - 원인 파악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다. 오판이었다. 점점 욱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분명 뭔가 잘못됐다.  재빨리 원인을 파악해서 제거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대부분의 경우 질문 몇 개만 던지면 효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Q1. 최근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언제야?

술을 마시면 솔직해진다. 때문에 ‘술’을 키워드로 잡고 들어가는 질문이 답을 얻을 확률이 높다. 단, 혼자 마시면 필름이 끊기기 십상이니 함께 마셨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

A1. 어제


Q2.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뭐더라?

안부를 묻고 관심사를 묻다 보면 자연스레 그날의 대화 주제가 정해진다. 어제 만난 언니들의 경우 ‘라이프 스타일’이었고 나는 ‘취준’이었다.

A2. 저 요즘 취업준비해요


Q3. 그때 나의 표정이 어땠을까?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취준’ 한다고 말하는 기분은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치 친구와 같이 누군가를 ‘덕질’하다 혼자 탈덕하겠다고 동네방네 외치는 기분이랄까…

A3. 애써 웃고 있었을 것 같아


Q4. 왜?

A4.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온 지금 상태가 불만족스럽거든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나았다. 문제는 ‘불만족’이었다. 아무리 꿈을 좇아 결단을 내렸노라 생각해도 실상은 백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최근 필기시험을 끝으로 느슨하게 생활을 했던 탓도 컸다. 아침 일찍 일어나겠노라 다짐했지만 눈 뜨면 늘 해가 중천이었다. 도서관에 가서도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만 보며 멍만 때렸다. “가진 것도 없는데, 하는 것도 없다? 베짱이가 따로 없군!”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평가와 함께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 것이다. 하필 날은 좋고 SNS를 보면 다들 잘 살고 있으니 자격지심도 커질 수밖에.


  불만족이 낳은 불만이었다.


02. 개복치 생존전략 - 대응 방안 수립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원인은 내게 있으니 나를 바꾸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진정한 개 생기의 길로 접어들지 못한 것 아닐까. 단점을 개선하는 게 말처럼 쉬웠으면 위인전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개복치 빅데이터에 따르면 문제의 시점을 바꾸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 어차피 지금 당장 내게 만족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동안 이걸 간과했다는 것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을 거쳐 나온다. 즉각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족의 시점을 미래로 옮겨두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다. 지금 만족할 수 있다는 전제를 종속절로 바꿔버리는 거다.


<나는 지금의 모습이 불만족스럽기에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현재 상황과 미래 기대되는 상태. 행동의 당위성까지 얼추 갖춰진 마인드셋이다. 물론 체화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생각을 바꾸는 건 참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면 사고방식이라도 다르게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03. 개복치 생존 전략 - 개복치 빅데이터

  자취방 책상 앞에 코르크 메모판이 하나 놓여있다. 거기엔 포스트잇이 잔뜩 붙여져 있다. 개복치가 (좀 더 강한) 개복치로 성장하고 싶을 때 명심해야 할 것들을 적어놓은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그냥 하자’를 붙였고 그 전에는 ‘못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지언정 못난 사람이 되지는 말자’를 붙여뒀다. 이제 또 한 장의 포스트잇이 붙게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만족하게 될 것”




  멘탈이 강하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중요한 건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전자가 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 사람이 강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게 눈앞을 가렸지만. 대처하는 법을 모르면 결국 남는 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개복치 빅데이터다. 물론 아직은 빅데이터라고 하기 초라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진정한 빅데이터가 되어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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