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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May 17. 2022

인생 최초 드라마 PD 필기시험 후기

이런, 개생기_04

왜, 유능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순간,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더라니까요?”


얼마 전, 나도 그 순간을 느꼈다!

문제는 시험 중에 겪었다는 것이다. 내가 장악을 해야 하는 시험장에서, 내 손은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번 시험도 망했다는 거다.




얼마 전, 모 드라마 제작사 필기시험을 보고 왔다. 드라마 PD 준비할 때는 한 번도 안 붙던 서류가  덜컥! 붙은 덕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동안 준비하던 논술은 잠시 미뤄두고 작문에 매진했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서.


아, 그런데 쉽지 않았다.


진로를 변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습관이 바뀌기에는 그다지 짧은 기간은 아니었나 보다. 지난 2주 동안 작문을 준비하며 느낀 건, 내 글이 지금 아주 차분하고 은은하게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일단 하고 본다.


나름 글 연습을 꽤 한 상태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어떤 주제어가 나와도 이전의 글을 참고해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게끔 말이다. 올해의 작제는 ‘사랑’이었다. 잠깐만… 사랑? 1차 위기가 왔다. 수험생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사랑, 애정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어쩌랴 그래도 써야지. 차분히 머릿속을 되짚어 봤다. 내가 써둔 글 중에 활용할 수 있는 게 있나? 오, 다행히 하나가 떠올랐다. 우화 형식으로 과일과 채소 간의 연애담을 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결말을 끝맺지 못한 채 넣어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험장에서의 나는 용감했다.


‘쓰다 보면 결말이 나올 거야!’




응, 아니야.



2/3 지점까지는 나쁘지 않게 끌어왔다. 아니, 처음 1/3 지점만 좋았다. 다음 1/3 지점은 위태로웠다. 마지막 1/3 지점은 각설하겠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결말을 내는 대신 사과문을 쓰고 나오는 편이 더 좋았을 법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는 없지만 산으로 가다 못해 망했다.


글이 ‘와해’되고 있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껴봤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험을 마치고 복기를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을 때, 머릿속에는 아… X 됐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상스럽고 유쾌하지 않은 말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그랬다.




빙글빙글 돌고 도는 취준생의 삶. 이리저리 휩쓸리다 지금에야 기자 지망생으로 정착했으나, 언론고시에 발을 들이게 된 가장 첫 순간, 그 당시. 나는 드라마 PD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드라마 PD 관련 활동을 제외하고는 다 해봤던 것 같다. 이상하리만치 ‘드라마’라는 말이 들어간 활동은 족족 떨어졌다. 대외활동이 그랬고, 교육원이 그랬다. 공채는 서류 탈락이 디폴트 값이었다. 이 길은 정말 내 길이 아닌가, 수없이 생각했지만 이제야 돌이켜보면 그 과정을 거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저 날의 시험장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재밌는….(지금은 마음 아프다) 이야기가 되어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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