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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Feb 17. 2023

돈 벌어다주면, ‘문화’야

‘비’표준국어대사전 1번_문화/대중문화

1.

지난 2020년. 독일 대법원이 테크노 음악을 문화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했다. 19%에 다달았던 클럽 입장권의 부가가치세는 7%로 낮아졌다. 7%는 공연장 등 문화예술 시설에 매겨지는 세금 비율이다. 청년층이 보인 클럽에 대한 ‘선호’가 ‘문화’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2.

표준국어대사전에 ‘문화’를 검색하면 아래의 정의가 가장 첫머리에 나온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다음으로 ‘대중문화’를 검색하면 어떤 뜻이 제일 먼저 나올까?

“대중이 형성하는 문화. 생활 수준의 향상, 교육의 보급, 매스컴의 발달 따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화의 상품화ㆍ획일화ㆍ저속화 경향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대중’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

“수많은 사람의 무리.” 아주 간결한 뜻풀이다.


3.

독일에서 테크노 클럽이 어엿한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던 배경엔 급격한 물가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청년들의 문화생활을 독려하기 위해 문화생활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영화관, 박물관 등이 전통적 의미의 문화였다면, 테크노 클럽은 일명 MZ형 문화인 셈이다.


주목할 점은, 1년에 베를린에서 클럽으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약 2조 300억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올해 우리나라 질병관리청 총예산이 2조 9천억 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오히려 어마한 수입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독일에서 테크노 음악은 한낱 오락(혹은 대중문화)에 그치지 않고 유효한 ‘밥벌이’ 수단이다. 특히나 테크노는 EDM음악으로 발전, 전 세계 페스티벌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며 앞으로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것만큼, 위상과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행위가 또 있을까. 이로써 디트로이트의 몰락과 함께 탄생했던 가난한 음악은 이제 명실상부한 주류 문화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4.

다시 사전으로 돌아가서, 대중문화의 길고 고상한 정의를 내 식대로 줄여보면 다음과 같다.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탓에 품위가 손상되고 속되(=저속)기 쉬운 행동 양상“


문제는 ‘저속한’이다. 분명 이 단어에는 무시와 멸시 혹은 배척의 시선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선호와 수많은 생활양식이 공존하는 2023년, 문화에 계급을 따지는 게 여전히 유효한 행동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구시대적 문화관과 새로운 문화관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BTS의 병역 특혜 논란이 아닐까 싶다. 당시 쟁점은 대중문화를 기존의 문화 예술의 편입시켜 국위선양을 이룩한 고귀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일종의 계급갈등이었다.


지금과 달리, 이전에는 대중문화가 예술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자리했던 탓이다. 이른바 ‘Mass Culture.’ mass는 19C 유럽 사회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지한 계층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원을 파고들자면 대중문화는 하층민의 문화인 셈이다.


그러나 신분제가 사라지며 ‘대중 중의 의미는 바뀌었다. 마침내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며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로써 예술도 평등해졌다 할 수 있을까?


5.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순수 예술 분야는 전통적으로 상위 계급이 향유하던 영역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주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진입 장벽이 낮다.


다시 말해 예술은 향유됨으로써 고급스러워지는 것이다. 반면 대중문화는 사이키 조명, 플라스틱 앨범 등으로 대표되는 스낵컬처에 불과했다.


대중문화가 ‘돈’을 벌어들이기 전까지 말이다. 독일의 테크노 클럽 이용 부가세가 낮아지고, BTS의 병역 특례가 논란으로 비화한 데는 결국 ‘자본’으로 대표되는 경제력의 극대화가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사회 체제에서 대중문화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점은, 그렇다면 돈 되는 모든 것이 고귀함의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라고 할 경우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황금만능주의’로, ‘아니다’고 한다면 위선적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라 대답하기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예술은 그 자체로 구시대적 구조와 계급을 탈피했다는 것이다.


6.

그렇다면 2023년 현재, 문화와 대중문화는 각각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이전까지 둘을 구분 짓던 가장 큰 경계는 ‘저속함’의 여부였다. 문제는 과연 저속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시선이었으며, 신분제 사회에선 주로 하층민의 문화가 저속함에 가까웠다.


다만, 시선이란 주관적이기에 사회가 변함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이때 변수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자본’의 관점에서, 어쩌면 자본 우월주의에 가까운 관점에서, 저속함이란 돈이 안 되는 것에 가깝다.(어쩌면 최근 심화한 가난 혐오 또한 이를 방증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적어도 현대의 문화와 대중문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문화: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 특히 경제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대중문화: 사회ㆍ경제적 이윤 창출에서 멀어진 행동 양상을 일컫는 말.


물론 이 정도까지 정의를 바꾸는 건 비약일 수도, 어쩌면 대중문화를 향한 매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단코 매도할 의도는 없다. 오히려 자기반성이다.


이렇듯 문화를 재정의하고자 했던 건, 스스로도 떨쳐버리지 못한 예술의 계층화를 가져다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를 통틀어, 나는 누구보다 열렬히 대중 예술 문화인을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하며 모든 OTT를 구독하고 있다.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최근 웹예능 트렌드는 무엇인지 유행하는 밈은 어떤 것인지 소비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정작 밖에 나가면 주말에 넷플릭스를 봤다고 하기보단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말이 더 선뜻 나온다.


7.

솔직한 마음으로는, 언젠가는 대중문화와 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창작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힘의 논리가 사라졌을 때, 취향의 분포로 문화와 대중문화가 다시금 정의됐으면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다수와 소수의 지배력, 메인과 서브의 정의 등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테지만. 그럼에도 언어는 가변성을 가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생각을 반영해 변화한다. 어쩌면 그 역순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이걸 뜯어고치고 재정의를 얘기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내가 당연하게 사용했던 ‘말’들이 2023년 2월에도 예전처럼 거리낌 없이 써도 될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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