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생 때, 학업 성적이 그리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논술을 준비했다. 최소 점수만 맞추면 됐기에 공부머리가 그닥 필요치 않았던 덕이다.
그런데... 논술 공부를 하며 거의 매일 울었다. 제시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내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선, 소위 말하는 ‘글빨’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없었다. 울다가 코를 풀면서 문장을 고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도 어찌저찌 논술로 대학에 갔다. 이제 평생 글이랑은 담 쌓고 살아야지. 합격창을 보며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이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과제가 죄다 글쓰기였다. 레포트, 소논문, 감상문…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교양 필수 과목에 ‘글쓰기’가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친구 생일 때 편지쓰는 것도 내겐 어려웠다. 동창, 동기들의 생일 때마다 편지 혹은 장단문의 카톡을 보내는 건 정말 부담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일에 엉망진창으로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지 고역이었다.
하기 싫지만 해야하는 것. 내겐 그게 바로 글쓰기였다.
2.
그럼에도 글쓰는 직업을 갖고자 했던 것이 참 아이러니다. 글쓰기는 싫어도, 내 생각을 드러내는 데는 부담이 없었나보다. 그렇게 인턴 기자로 1년을 보냈다. 9 to 6 (때때로 9 to 9+a), 일하는 내내 ‘글 못써서 큰일’이란 말을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대입논술 이후 거의 4년 만에 글쓰는 재미를 알게됐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을 엮어 현상을 전달,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자의 글쓰기 방식이 좋았다.
그렇게 글쓰기 언저리를 기웃거리다 지금까지 왔다. 제법 얽히고 설킨 시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글쓰는 직업을 갖기 위해 쓰기 싫은 글을 쓰는 데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것이었다.(아마 다 밀어버린 브런치 글의 절반 이상이 자소서 쓰기 싫다는 투정이었을 거다)
그 과정을 거치며 글쓰기에 다시 환멸이 나기도 했고(진짜 환멸이 났다. 글쓰다 토한 적도 있다.), 아주 드물게 마음에 드는 글을 쓴 날엔 묵은 체증이 내려가기도 했다. 그 재미에 또 다음 글을 쓰곤 했다. 그 즈음 브런치에도 열심히 글을 올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애증으로 써내렸던 글들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계속되는 시험 낙방에 자신감이 떨어진 게 제일 컸다. 꼴에 언시생이라고 글을 올리는데, 허구한날 푸념이나 신세한탄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통찰력이나 정보값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알맹이 없는 글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결국 브런치에 썼던 글을 다 밀어버렸다.
그리고 기자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열린 공간에 글을 쓰지 않겠다 다짐을 했다.
3.
그런데 나는 아직도(아직도!!!) 수험생이다. 뭐하느라 아직도 공부중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살다보니 이렇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이렇게 좀 더 살아볼 생각이다.) 하지만 맨날 입사 준비를 위한 글만 쓰다보니 (보람은 있어도) 좀 힘들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틀에 갇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부끄럽고 알맹이 없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감정과잉이든, 휴지조각이든, 시간낭비든. 뭐가 됐든, 뭐라도 쓰면서 균형을 찾아갈 생각이다.
심지어는 원래 글 첫문장 쓸 때까지만해도, 약간의 정보값이라도 넣어야지 생각했다.
근데 안 그럴거다.
사실 넣어봤는데 딱히 정보성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재치있는 여행기, 날카로운 비평문, 참신한 독후감. 솔직히 못 쓰겠다. 그래도 딱 하나, 그럭저럭 자기고백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연민 말고)
사실 이쯤되니 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게될 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뭐든 하고있겠지란 생각이다. 앞으로 글도 아마 이런 생각으로 쓸 것 같다.
자주 빈털터리 자기고백을 하다 가끔 좀 읽을만한 글을 쓰지 않을까싶다(제발..). 비록 나의 브런치 목록이 엉망진창이 될 지라도 이번엔 그대로 놔둬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