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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ug 04. 2023

마음대로 쓰기로

딴짓하는 게 제일 재밌다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전자시계나 다름없던 휴대폰에 알림 하나가 떴다.

‘ 스팸문자?’인가 하고 봤더니 세상에 브런치 알림이었다.

업로드 안 한지 오래됐는데, 댓글이 달렸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눌러봤더니

‘저기요 글 안 쓴 지 엄청 오래 지났는데 좀 쓰세요’라고 하더라.

안 그래도 요 며칠 전부터 쓰고 싶은 글이 하나 있었는데,

사진 자료가 필요한 글이라 틈 날 때마다 사진 찍고 자료 모으다 보니 벌써 며칠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 사이 시험 준비 하느라 정신없기도 했지만 뭐 핑계란 게 사실 찾으려면 끝도 없는 거라(.. 그냥.. 맞아요 제가 게을렀습니다.)




그런데 실은, 솔직히 말하면 사진도 찍어뒀고 글감도 정해두긴 했다.

재료는 다 있는데 시작을 못했던 건 이번에도 순전히 내 욕심 탓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가볍고 재밌게 글을 쓰면서 또 내용은 알찼으면 좋겠는데

이 욕심 간의 타협점을 찾기가 좀 어려웠다.

몇 번씩 글을 썼다 지우다 깔짝대봐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래도 이렇게 노트북을 켰다는 건, 뭐라도 쓰기 위함이지 않을까?

물론! 앞에서 설명이 길었지만 밑장 빼기는 이쯤 하고 글을 시작하겠지?

양심이 있다면! 준비했던 글을 쓰는 게 맞지 않을까?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ㅎㅎ


아니!? 오늘 나는 준비했던 글 대신 시험 이틀 앞두고 딴짓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쓸 거다.


오늘(4일) 기준, 이틀 뒤면 모 언론사 필기시험이 있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사의 시험이었는데..

평소에 차분히 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을 앞두니까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카페인에 절어서 살았다.

공부 효율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사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키기 위함이었다.

미련한 방법이지만, 수험생 멘털이라는 게 어쩔 수 없단 걸 다시 느꼈다(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약 13시간 동안 도서관에 있는 내내 카페인을 수혈하다 집에 오면

몸은 정말 지치는데 정신은 말도 안 될 만큼 깨어있다.

(카페인이 진짜 어이없는 게, 마실 때는 피곤한데 자야 될 때는 또 사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 깨어있는 정신에는.. 큰 함정이 있다.

공부에 쓸 만큼 또렷하진 못해서 그냥 정말 눈만 떠 있게 되는 거다.

그냥 멍하게 앉아있으면서 ‘아… 오늘 봤던 거 뭐더라… 내가 뭐 공부했지…‘ 되뇌다가

생각이 안 나면 ‘흑.. 바본가 봐…’라고 사람을 좌절시키는 아주 질 낮은 각성 상태라

솔직히 깨어있어도 문제다(애당초 그 시간까지 깨있는 게 제일 문제 아닐까?).

그 와중에 자기 전에 잠깐 유튜브 켜서 보는 푸바오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어쨌거나,

방청소 하다가 발견한 일기장처럼

다이어트하다 결국 입이 터져서 먹어버리는 컵라면처럼

시험을 앞두고 하는 딴짓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논술 연습 해야 되는 지금 내 마음대로 글을 써내는

브런치도 마찬가지다(즐겁다)


나는 원래 취미나 취향을 잘 모르고 살다가,

취업준비, 시험 준비 하면서 좋아하는 걸 찾은 케이스다.

공부하고 글 쓰기 싫어서 책 보고 영화 보고 노래 듣다가 내 취향을 찾아간 거다.

그러니 딴짓을 하는 게 얼마나 즐겁겠는가.


하루는 이런 적도 있었다.

주제가 뭐였더라, 기억도 안 난다.

어쨌거나 정치에 관한 내 의견을 글로 풀어내야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이 정치고 사회고 논술이지,

이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를 하나의 주제로 좁히고

또 읽는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완독 하도록 1500자를 쓰는 게 쉽진 않다…(적어도 나한테는 어렵다)


이럴 때 해답이 바로 ‘책 읽기’인데,

나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살았던 어른들

혹은 그 시대를 처절히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던 사람들이 쓴 글을 하나씩 뜯어먹고 있으면

대치동 족집게 수능 과외를 들은 것처럼 머리가 활발하게 잘 돌아간다.


그런데… 그런 책을 읽다 보면 꼭 한 번씩 샛길로 빠질 때가 있다.

가령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라는 책을 읽다가

50~60년대까지만 해도 문단의 논쟁이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됐단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문학적 토론을 활발히 주도했던 작가들 중에 내게 꽤 익숙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 이름을 보니 문득 또 그 사람들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그럼 이제 또 알라딘 이북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는 거다.

아, 그래 이런 책이 있었지! 하고 결제해서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심지어 현대문학은 값도 합리적이라 부담 없이 얼마든 읽을 수 있다)

2시간 정도 집중해서 읽다 보면

‘어어어 이럴 때가 아니지’하고 다시 원래 읽던 책으로 돌아가는데

그 2시간이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정말 중구난방으로 제멋대로 흘러가는 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참 신기한 게, 도서관에 있다 보면 요즘에 회무사나 세무사

혹은 고시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이는데 다들 하나같이

묵묵한 표정으로 꾸준히 앉아서 조용히 공부한다.


물론 그 친구들도 자신만의 고민이 있고

힘든 부분들이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정말

‘아 저런 친구들이 고시를 하는구나’ 싶다.


2시간 시시덕거리면서 책 읽다가

정신 차려야지 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풍경이 그 친구들인데 그럴 때마다 사실 반성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래도


딴짓이라도 안 하면 (이하 생략)


어쨌거나 나는 컨디션 조절을 핑계로 오늘 일찍 잘 거고

내일은 멘털 관리를 핑계로 헬스장에 갈 거고

일요일은 결전의 날인만큼 열심히 시험을 볼 거다


그 뒤의 일은 또 그때의 내가 잘 알아서 하겠지!


맞다, 이렇게 주절주절 의미 없는 글을 쓰고 딴짓을 하는 이유는

사실 아직도 긴장되고 무서워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간의 내가 일요일에 나를 배신하지 말아 주길 바라며

오늘은 정말로 (과자 한 봉지만 먹고)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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