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도서관여행으로 백 배 즐기기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늘 개막했습니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2024)입니다. PMS(월경 전 증후군)를 겪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겪는 야마조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전작은 청각장애 여복서 케이코를 주인공으로 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었죠. 인상 깊게 봐서 더 기대가 됩니다. 두 작품의 짧은 줄거리만으로 그의 영화적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 수 있어요.(전직 영화기자 티를 조금 내봅니.^^)
앞선 글에서 전주는 영화의 도시이지만 근래는 도서관의 도시라고 말씀드렸지요. 전주도서관여행을 이용하시면 좋은데요. 토요일만 운영하고 그 또한 예약이 쉽지 않으실 거예요. 취소 표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요. 크게 상관없습니다. 무작정 찾아가도 왜 전주가 도서관의 성지이며, 도서관여행을 추천 드리는지 어렵잖게 아실 수 있을 테니까요.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즐기기 좋은, 영화제 상영관 옆 전주도서관 best7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영화제를 즐기는 틈틈이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보시고, 전주의 또 다른 여행 매력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전주에는 영화호텔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어요. 영화의 도시답죠. 주요 상영관이 있는 시내 중심가에 있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전주프로젝트행사장으로도 이용됩니다. 영화도서관은 영화호텔 2층에 있어요. 카페가 있고안쪽에 영화도서관이 자리하죠. 큰 구분없이 호텔 2층 로비 전체를 넘나들어요.
영화도서관은 각종 피규어와 영화포스터, 영화잡지 등 영화박물관을 방불케 합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아요. 야외에서 곧장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어요. 토키와 35mm 영상 프로젝터와 196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 (Blow-Up)> 포스터가 마중합니다. 레드카펫을 밟고 영화제에 입장하는 것 같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의 사인 포스터가 바통을 잇네요. 그 곁에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1001편>(마로니에북스)이 꽂혀 있어요. 어느 시절인가, 누군가의 책장을 차지했을 법한 책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젊은 시절 차승원, 배두나 등이 표지모델로 등장하는 전설의 영화 월간지 ‘키노(KINO)’, 일본을 대표하던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 그리고 제가 일했던 영화주간지 ‘씨네버스(cinebus)’도 보이네요.
그 낡은 잡지 낱낱의 장을 넘겨보는 동안 만큼은 이곳이 시네마천국입니다. 할리우드 키드가 되어 영화의 추억에 젖습니다. 도서관에는 1895년 제작한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 등 1만 5,000여점의 영상자료와 3,400여권의 전문서적, 2,000여권의 영화잡지를 소장하고 있어요.
서가 반대편에는 DVD를 볼 수 있는 영화감상석이 있는데, 카페에서 음료를 구매하며 요청하시면 원하시는 영화를 볼 수 있고요.(오전 10시~오후3시, 1인 1편) 하지만 영화도서관은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미 아득한 그 시절로 당신을 안내할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영화도서관만이 줄 수 있는 환희일 테죠.
개막식이 열리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약 1.5km 떨어진 곳에는 덕진공원이 있습니다. 덕진공원은 7~8월에는 연꽃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그 한가운데 한옥으로 지은 연화정도서관은 연꽃처럼 피어난 한옥도서관이라 할 수 있어요.
덕진 연못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용왕에게 제를 지내던 성스런 장소였어요. 일제강점기에 뱃놀이 터로 쓰였고요. 광복 후에는 전주의 대표 유원지였고 연화정은 그 상징 같은 공간이었죠. 그 이후 휴게소, 음식점 등으로 쓰이다 지난 2002년 재건축 과정을 거쳐 도서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연화정도서관은 도서관 공간인 연화당과 문화공간이자 쉼터인 연화루로 나뉘어요. 연화당에서는 창밖으로 연못 풍경이 보이죠. ‘책 읽을 맛’이 나요. 한옥의 나무 느낌도 좋고요. 연화당에서 책을 읽다 연화정으로 건너가요. 연화정은 책 없는 쉼터입니다. 바깥 쪽마루 난간은 연지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좋아 자리 경쟁이 치열해요.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아요.
금암도서관은 일반상영관인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멀지 않아요. 도서관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명품 도서관이고요. 하지만 역사가 깊어요. 1980년에 개관한 전주 최초의 시립도서관입니다. 몇 해 전 새로 단장했고 현재는 전주도서관 가운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합니다다.
도서관으로 들어섭니다. 천장까지 다다르는 열린 로비가 탁 트인 개방감을 선물해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죠. 도서관 2층 지식마루에 이르니 이번에는 눈앞이 시원스레 열립니다. 금암도서관은 전주도서관여행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 해설사님께 추천받았는데요. ‘오성급호텔 전망’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도서관이 위치한 지형이 고지대인 까닭에 실제로 여느 호텔 스카이라운지 버금갑니다. 창가 쪽 에그체어가 명당인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그럴 만해요. 1인석인데다 책장을 넘기기보다 풍경에 빠져드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요.
그럴 땐 3층으로 올라갑니다. 3층 트인마당은 아예 야외 테라스로 나아가요. 야외 테라스 데크 위에 앉거나, 빈백에 몸을 뉘입니다. 눈앞에는 ‘전망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경관이 펼쳐져요. 망중한이나 봄을 ‘멍’하니 누리기 알맞은 자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