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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15. 2018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교토에서

숙소를 나와 명화의정원(garden of fine arts)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모가모니시혼마치 어딘가에서 버스를 내렸다. 우리는 조금 걷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날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의기양양하게 우산 파는 편의점 앞을 지나쳤다. ‘オグラ(오구라)’라는 이름의 단정한 이발소를 지나쳤다. 호기심 많은 너는 한 걸음 앞서 걸었다. 그리고 불쑥, 길가에 있는 어느 가게 문을 열었다.


세 평 남짓한 골동품 점이었다. 자그마한 가게 안쪽에는 파티션을 두른 작업실이 있었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떠올렸다. 시즈쿠와 세이지는 시로 할아버지의 골동품가게에서 만났었지. 기대 섞인 환상은 금세 무너졌다. 벽시계를 수리하던 주인장은 너무 젊었다. 그는 우리와 가볍게 눈을 맞추고는 제 작업에 열중했다. 


작업실을 제외하면 남은 공간은 온통 낡은 물건들이 차지했다. 낡은 의자와 낡은 책상, 트랜지스터라디오, 서랍이 분리된 수납함, 어딘가에서 분리한 마차 바퀴 등이 모순되지만 두서없이 지금 아닌 먼지를 얹고 가지런했다.

너는 좁은 공간 안을 잔걸음과 게걸음으로 옮겨 다녔다. 목각인형 하나를 들었다 놓았고, 작은 목기 하나를 들어 꼼꼼하게 살폈다. 마치 그 안에 가게의 나이테라도 새겨진 듯.



‘안도 다다오가 지은 명화의정원이 코앞인데...’

나는 심드렁하니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 그만 가자는 표시였다. 잠시 가게 앞을 서성였고 다시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여전히 그 작은 가게에 빠져 있었다. 

‘그래, 너의 여행이기도 하니까.’

나는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창 너머로 너를 관찰했다. 너는 자리를 옮기더니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청동 주전자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어느 세월을 견딘 노부의 사연이라도 담긴 듯, 손가락을 오므려 두드리고 뚜껑을 열어 안까지 꼼꼼하게 더듬었다. 주전자를 내려놓은 후에도 눈동자를 굴리며 옆에서 옆으로 다음 사연을 채집하러 나섰다. 어찌나 진지하던지.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너는 또 조금 생경했다. 익숙해진다는 건 편안하다는 것이고 낯설지 않다는 것이며 놀랍지 않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미 알고 있다는 편견의 출발점일 것이다. 


買い取りやってます(매입하고 있습니다)

그때 창가에 쓴 손글씨가 너와 겹쳤다. 나는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낡고 오래됐으며 적당히 먼지가 낀, 그럼에도 누군가는 선뜻 손을 내밀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내가 이 작은 골동품 가게에 남길 만한 것이 너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주머니를 뒤졌다. 일본에서는 100원짜리 동전만도 못할 100엔짜리 동전 몇 개가 나왔다. 가방 안에 든 건 한글 소설 한 권과 지난여름 브리즈번에서 산 지갑과 교토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하기야 여행자에게 낡고 오래 된 물건은 제 몸 말고 무엇이 남을까. 연인의 유산이란 그 유치한 사랑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너는 못내 아쉬워하며 골동품 가게를 나왔다.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걸었다. 이번에는 모네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가짜 그림이 걸려 있는 명화의정원을 향해.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멈췄을 때 동네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휘파람을 불며. 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 싶었다. 호기심 많은 너는 어김없이 한 걸음 앞서 걸었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셈할 수 없는 발견이었을 뿐. 간절한 것은 또 얼마나 오래 걸려 이곳으로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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