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1일 일요일
우리 말에는 '무덥다'가 있다.
‘덥다' 정도로 표현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무더운 하루였다.
하동에서 올라오는 길.
환승으로 들린 청주에서 친구를 만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만난 건 고작 세 번이다.
그래도 늘 '청주에 좋은 친구가 있지'라고 생각한다.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커피를 마신다.
친구는 앉자마자 말썽쟁이 아들 이야기다.
어제 만난 것처럼,
어제 한 이야기의 속편처럼.
친구가 흥분할 때 얼굴에 주름이 진다.
나는 친구 얼굴에서 내 얼굴의 나이를 본다.
"요즘은 모든 결정의 기준이 아이들이야.
그러다보면 내 인생은 어디 있나 싶기도 해."
아이가 없는 나는 그 말을 조금 알 것도 같고.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하고 나오는 길,
나는 나릐 후배이기도 한 친구의 아내를 위해
치즈 케잌 하나를 산다.
버스에서 오르기 전에는 악수를 하고
어깨를 부딪친 후 친구의 등을 토닥인다.
버스에 타고 나서야
"참, 코로나 시대지"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버스 좌석에 앉았을 때는 마음이 울렁울렁한다.
친구 눈이 반짝였던 것 같기도 하고.
슬픈 일은 없고 반갑기만 한데,
우리가 아직 서로를 기억해
서로의 시간을 잇고 있다는 사실은
기쁘게도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요즘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자꾸만 작은 눈물이 난다.
참아보려 침을 삼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