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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22. 2020

어느 가족 - 카페 배양장

2020년 06월 10일

날씨

비가 조금 오다 말다

저녁 무렵 그쳤다.



카페는 작은 포구 옆이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은 카페 바깥 포구에도 있다.

젊은 엄마는 그곳에서 어린 남매와 마주앉아

소꿉놀이 하듯 커피를 마신다.

어린 남매는 유쾌하게 조잘거리며

엄마 주위를 맴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아.”

ㅍㅅ가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카페 유리창 너머로 본다.

이곳은 통영의 서쪽 끝 어디쯤에 있는 카페다.

손님은 카페 안 우리와 카페 밖 그들이 전부다.     

나는 아인슈페너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창밖의 엄마와 남매를 바라본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가리키고

아이들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 따뜻한 장면이 내 안에 차오른다.


그 당연한 것이 어색해,

나는 ㅍㅅ와 조금 떨어져 그들을 바라본다.     

그 사이 엄마와 남매는 커피 잔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다.

자그마한 포구를 걸으며,

아이들은 번갈아 엄마의 손을 낚아챈다.

이어달리기 선수처럼 앞서기니 뒤서거니.


나는 가만히 그들의 뒷모습을 좇는다.     

먼저 뛰던 아이들은 운동 기구에 올라 장난친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두 아이를  지나쳐 걷는다.

딸아이가 달려가 엄마를 끈다.

엄마는 아이 손에 끌려 뒷걸음친다.

세 사람은 커피 대신 운동 기구를 사이에 두고

다시 깔깔 웃고 장난친다.

먼데여도 그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포구 너머로 하루 해가 지고 있다.

석양은 보이지 않는다.

포구는 북향이고 비가 내린 날의 흐린 오후다.     

카페 이름은 배양장이다.

예전에는 멍게 배양장으로 쓰였던 장소다.


카페의 젊은 주인은 8년 동안 멍게 배양을 하다,

그 배양장에 카페를 차렸노라 말한다.

그는 멍게 배양 대신 ‘수산업’이라는 말을 썼다.

그는 카페가 주말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말한다.

그러니 평일의 저녁은 조금 특별한 침묵의 시간이다.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그 사이 엄마와 남매가 돌아온다.

그들은 커피 잔을 챙겨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어촌에는 우리와 두 남매와 엄마와

젊은 카페의 주인 밖에 보이지 않는다.

ㅍㅅ와 나는

오래 전 찾았던 어느 영화 속 바다를 떠올린다.

그곳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북향의 바다마을이었다.      


오후 8시 이른 여름의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

우리는 배양장을 나와 그들처럼 포구를 따라 걷는다.




배양장 카페

통영시 산양읍 함박길 51

010-4406-6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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