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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ug 30. 2020

“고단한 삶의 불균형

을 조정하며 그렇게 우리는 여행의 위로로 살아왔습니다.”

이달 초 서울문화역284에 다녀왔다. 한 주 지나 서울문화역284는 잠정휴관에 들어갔다. 코로나시대 이전에는 새 전시가 있을 때면 서울문화역284를 찾았다. 옛 서울역에서 새로운 작품을 마주하는 건 일상의 작은 여행이었다.

이번 전시는 제목이 절박한 시선을 끌었다. 여행작가는 코로나시대 이후 크게 위태한 직업이다. ‘여행이 멈춘다’는 맞닥뜨려본 적 없는 현실은 적잖이 당혹스럽다. 그래서 ‘여행의 새발견’이라는 제목은 마치 ‘희망의 새발견’처럼 보였다.   


“여행이란 우리의 사고와 판단, 생활의 추를 조정해 균형을 잡아주는 활동입니다. 일상의 밖, 여백입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일상이 우리에게 부여했던 어떤 불균형을 조정합니다.”      


김노암 예술감독이 적은 소개 글이다. 예술은 끊임없는 발견의 여행이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길을 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앞서 걷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리적 여행이 증발하려 하는 시대에 ‘예술의 여행’은 위태롭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영감의 발견이고 모험이자 도전이지만, 보통 사람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있는 쉼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일상을 잠깐 멈춤으로 얻는 '여백' 일 거다.


우리는 고단한 삶의 불균형을 조정하며, 그렇게 여행의 위로로 살아왔다. 여행은 오랜 시간 우리에게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백의 상실’을 경험했고 ‘일상의 밖’을 잃어버린 날들로 불균형하다.          




옛 서울역의 중심이었던 중앙홀과 3등대합실 그리고 서측복도를 지나 역장사무실과 귀빈실 등을 돌아본다. 옛 서울역의 공간들은 모두가 전시실로 변신했다. '여행의 새발견'을 차례차례 마주한다. “우리가 인생을 분석하는데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인 것처럼, 여행도 분석되지 않은 의식 밖의 영역”이다. 그러니 ‘새발견’이라는 말은 애초에 모순이다. 지금 이곳에서 ‘여행의 새발견’은 ‘일상의 재발견’의 반대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내가 원하는 답은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슬픈 발견일지언정 새발견의 순간은 있었다.      


옛 귀빈예비실에는 임훈, 전민수 작가의 <세한도(歲寒) VR>이 전시 중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빌려 만든 작품이다. VR헤드마운트를 쓰고(그전에 코로나 예방을 해 마운트 크기의 팩마스크를 안쪽에 쓴다) 추사의 세한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세 가지 메뉴를 선택해 경험한다.


VR 숲속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나무 사이를 걷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그 풍경이 경이로워 눈송이를 만지려 했다. 가상현실이라는 걸 알지만 비현실적일(!) 만큼 황홀한 계절 안에서,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만져지지 않는다(만질 수 없다가 아닌)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쓸쓸해졌다. 나는 여전히 그 찬란한 설경 속에 있지만 그 숲의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사랑 밖에 사랑이었다. 용기 없는 희망이었다. 말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추사가 유배지(는 세상과 떨어져 있어 더 고즈넉해 보인다)에서 느꼈을 고립과 외로움이란 아름다운데 만질 수 없는데서 오는 그 쓸쓸함이었을 것이다. 코로나시대 여행이 슬퍼지는 건 우리가 서로를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손을 맞잡으며 악수하고, 서로의 심장을 느끼며 마주 안고, 침묵으로 입을 맞추는 그 모든 인사를 멈춰야 한다는 사실이, 보이는 것이 생생하고 아름다울수록 그리움과 상실감은 더 깊어져 우리를 유배한다. 여행과 유배는 닮은 듯해도 이토록 다르다.     


“여행을 하면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 몰입합니다. 가장 낯선 순간들 또는 너무도 반가운 순간들, 이 현재의 순간들이 하나둘 쌓여 여행의 시간을 채웁니다.”     


누구도 발견한 적 없지만 마치 영원할 것처럼 존재했던, 여행의 순간은 다시 올까?               





⁋ 서울문화역284의 '284'는 사적 284호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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