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와 ‘Starry Beach’가 보여준 유사 여행의 미래
북저널리즘의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있다. 북저널리즘에서 진행한 인터뷰(talks)가 주된 내용이다. 8월 27일 받은 뉴스테러는 디스트릭트(d'strict) 이성호 대표 인터뷰였다. 제목이 ‘디테일의 디테일까지 집착하라’였다.
오늘은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9월 30일 아르떼 뮤지엄 개관’ 소식을 봤다. 아르떼뮤지엄은 제주에 개관하는 몰입형미디어아트전시관이다. 어떤 곳일까? 디스트릭트는 코엑스 야외광장에서 선보였던 퍼브릭미디어아트 ‘Wave’나 ‘GIANT TOY’를 만든 기업이다. 그리고 아르떼뮤지엄은 디스트릭트에서 선보이는 뮤지엄이다.(디스트릭트 유튜브)
국제갤러리 3관(K3)도 아르떼뮤지엄의 미리보기가 될 수 있다. 현재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작업 'Starry Beach(별이 빛나는 해변)'가 전시 중이다. 역시 디스트릭트의 기술로 만들어진 전시다. ‘Wave’의 다음 버전이랄까? '
국제갤러리 전시관 하나가 블랙박스로 변신해 'Starry Beach(별이 빛나는 해변)'를 담고 있다. 'Starry Beach(별이 빛나는 해변)'는 ‘Wave' 와 달리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밤의 해변을 걷는 듯한 느낌을 연출한다. 다만 이미 선 경험이 있어 ‘Wave’만큼의 감흥을 안기지는 못했다. 스케일 또한 ‘Wave’보다는 작었다. 소재 접근도 좀 더 도발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여러 모로 다시금 ‘Wave’를 떠올리게 했다.
현 시점에서 ‘Wave’를 다시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왜 ‘Wave’였을까? ‘Wave’는 상반기에 본 꽤나 인상 깊은 영상 콘텐츠였다.
우선 시각적으로 압도했다. 가로 81m, 세로 20m 크기(농구장 4개 면적)의 ‘ㄷ(ㄴ)’자형 대형 스크린에 담은 8K 초고해상도 영상은 놀랍도록 선명하고 거대했으며 역동적이었다. 과연 sns나 youtube가 담을 수 없는 공간감이었다. 1분 동안 실제로 눈앞에 파도가 치는 듯했다.
‘Wave’는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입체감을 표현한 아나몰픽 기법으로 만들었다. 디스트릭트의 이성호 대표는 ‘기술을 활용해 공간 경험을 디자인한다’고 표현했고 ‘상상하지 못한 장면을 보여주자’가 목표였다고 한다. 맞다. 등 뒤 16차선 영동대로 위를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오가는데, ‘Wave’ 앞에서 잠깐이나마 마치 바다로 여행을 떠난 듯했으니까. 그들의 기술이 도시에서 바다를 경험하게 한 것다.
더불어 ‘바다를 가둘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3D스크린에 ‘담아냈다’거나 ‘구현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한편으로는 ‘가두다’는 느낌이 주는 충격이 있었다. 거대한 바다가 3D 스크린 안에 채집당했다고 할까. 곤충채집과는 확실히 다르다.
또한 같은 가상현실이지만 VR과 다른 점은, ‘Wave’가 이용자를 콘텐츠 안에 가두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가둬 이용자에게 보여줬다는 거다. 물론 이 또한 VR과 만나게 되겠고 ‘Starry Beach’는 그런 형태에 가깝지만, ‘Wave’라는 가상현실과 코엑스광장이라는 현실이 공존하며 만드는 이질감이, 분명 한층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고 있었다.
청계천 청계광장의 ‘스프링’을 만든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그는 일상의 작은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미술관 안보다, 공공미술로 도시 한가운데 놓였을 때 빛을 발한다.
또 주목할 건 ‘Wave’와 ‘Starry Beach’가 그 기술을 극대화하기 위해 ‘파도(Wave)’를 소재로 연출했다는 점이다. 흘러가는 하늘이나 산맥 또는 잔잔한 수평선의 바다였다면 ‘Wave’와 같은 충격을 주지는 못했을 거다.
파도(Wave)는 가장 격렬하게 움직이는 바다다. 사람들은 파도에서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를 떠올리며, 동시에 파도가 몸부림치는 장면을 통해 바다가 살아있다고 느꼈을 거다. 무엇보다 'ㄷ'자형 스크린이었다. 파도 또는 바다의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술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그로 인해 ‘Wave’는 가짜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얻었으며 바다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을 자극한다. ‘Starry Beach’는 이를 밤바다로 확장했고, 코엑스에서는 두번째 퍼블릭미디어아트로 ‘GIANT TOY’를 선보였지만 나에게 ‘Wave’가 가장 강렬했던 건 그 바다의 단면 때문이기도 했다.
앞서 북저널리즘의 이성호 대표 인터뷰 제목이 ‘디테일의 디테일까지 집착하라’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아나몰픽 기법이 ‘디테일’의 성과라면, 그 안에 하늘과 산과 바다가 아닌 ‘파도’를 담은 건 디테일의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ave'는 그 소재가 '파도'여서 더 큰 관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Wave’는 코로나가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간 시기라 감흥이 더 했다. 앞으로 이런 콘텐츠는 일부분 여행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리에서 그리고 극장이나 공연장,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또는 집에서 좀 더 생생한 ‘가상의 바다’를 만날 수 있겠지. 이미 ‘Starry Beach’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듯이.
그곳에 갈 수 없다면, 그곳을 ‘가둬서’ 가져오는 것도 방법이겠다. 여행을 갈 수 없다면 ‘유사 여행’이 대안이 될 거고. 그럴수록 진짜 바다에 대한 갈망은 더 높아지겠지만.
⁋ 북저널리즘 인터뷰는 마지막 질문으로 ‘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콘텐츠’를 묻습니다. 이성호 대표는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아메리칸 아이돌〈Daisies〉무대를 추천했다. .
⁋ <Wave>를 보면서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신안선전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기술의 영역이지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여전히 기술과 무관한 인간 사고의 영역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으로 목선 한 채를 통째로 전시한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을 다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