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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ug 28. 2020

“여행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적어도 시선의 권력에 한해서는 그렇습니다.“

제주 출장을 다녀왔다. 올해 처음 비행기를 탔다. 창가 자리를 예약했다. 조금 불편해도 창가 욕심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오가며 하늘을 보는 게 좋다. 발끝에 아득한 도시와 바다를 보며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발끝은 아득한데 풍경은 발아래 있다. 유현준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시선의 권력’에 대해 말한다.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고, 본인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맨 꼭대기에 산다. 돈으로 공간의 권력을 사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한 가지가 떠올랐다. 여행은 우리를 부자로 만든다. 아니 부자를 넘어 신으로 만든다. 적어도 시선의 권력에 한해서는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비행기다. 라이트형제는 1909년에 회사를 세우고 비행기 사업을 시작했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건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그전까지 하늘은 신의 역역이었다. 신이 된 듯 하늘을 날며 지상을 내려본다. 전지전능한 시점이다. 롯데타워 펜트하우스도 그저 발아래 건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비행기 좌석은 이코노미에서 퍼스트 클래스까지 나눠진다. 그럼에도 불편한 건 좌석일 뿐 눈높이는 똑같다. 


공간 권력은 높은 곳만에만 있지 않다. 지상에서 역시 여행은 신이 된 듯 우리를 들뜨게 한다. 타국의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나와 상관없는 노동은 한없이 평화롭기 만하다. 불과 어제까지 내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상실감은 거기서 온다. 누군가는 그 상실감이 싫어 끊임없이 세계를 떠도는 것일 테고. 우리는 그런 이들을 ‘자유인’이라고 부러워 한다. 하긴 자유를 얻은 인간이라면 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통장에 잔고가 쌓이면 우리는 다시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그러니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건 여행이 아니라 가끔씩 신이 될 수 있었던 기회일지 모른다.


과연 여행의 날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실은 우리 모두 여행이 ‘신이 되는 기회’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비행기도 오래 타면 창밖 풍경이 지루하다. 여행은 시선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요. 우선은 또 하루를 살아 낸다. 곁에 있는 사람의 등을 두드리면서. 높은 곳에서는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는 눈을 맞출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하는 법 또한 알고 있다. 결국 지지 않아야 이기는 거다. 내일의 여행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본다.


               




⁋ 글을 쓰고 나서 재미난 소식 하나를 들었다. 에어부산에서 국내 항공사 최초로 목적지가 없는 항공권을 판다고 한다. 김해공항을 출발해 남해안과 제주 인근까지 비행한 후 김해공한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우선은 대학생 체험프로그램으로 시범 시행하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계획도 있다고. 비행기 드라이브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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