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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Sep 10. 2020

part2.아일랜드조르바가 왜 거기서

디앤디파트먼트제주와 아일랜드조르바 커피

디앤디파트먼트제주 1층 식당은 제주의 식자재를 사용한 음식이나 음료를 낸다. 제주 지역의 조리법으로 제주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하는 한식당이다.

식사 메뉴 구성은 다소 아쉽다. 제주정식, 계절나물 비빔밥 정식, 감귤 고추장 돼지 불고기 덮밥 정식, 메밀수제비 정식 등이 있다만, 제주의 식재료를 재해석했다는 느낌은 약하다. 아직은 제주 재료를  '일본식 백반' 느낌이었다. 오픈 주방 한쪽을 차지한 가마솥은 인상적이었다. 이런 물건 하나가 공간을 환기한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당분간 카페인을 끊기로 해서 제주 비트 주스를 마셨다. 그 사이 메뉴판을 보다 눈길을 끄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디앤디파트먼트제주의 커피 원두는 아일랜드 조르바에서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우선은 그 문구가 반가웠다. 아일랜드조르바는 제주 여행 역사에 있어서 그냥 잊혀서는 안 되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제주올레와 맞먹는 상징성을 갖는다.


아마도 근래 제주를 찾는 분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거다. 하지만 제주 붐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카페가 아일랜드 조르바다. 조금 과장되게 설명하면 ‘제주 카페 붐의 시작’이다. 제주 해변 카페 붐의 시작이 월정리해변이고 월정리의 출발이 카페 아일랜드조르바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과거형은 아니다. 아일랜드조르바는 현재 평대리에서 계속 운영 중이다. 수요미식회에 나올 만큼 커피 맛이 좋다. 그 때문에 디앤디파트먼트제주는 아일랜드조르바의 원두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월정리해변에 아일랜드 조르바만 있던 시절


아일랜드 조르바는 2010년 4월 경 문을 열었다. 아일랜드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제목만으로 ‘여행’ ‘자유’ 등의 키워드를 연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세 여성이 운영했다. 셋이 있기도 하고 셋 중 한둘이 있기도 했다. 나는 그 해 여름 제주 책 작업을 하러갔다 처음 찾았다. 월정리해변 바로 앞이었다. 자그마한 테이크아웃 카페였다. 그런데 운영 방식이 조금 색달랐다.


우선 주문을 한다. 월정리 바다를 보며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잠시 후 테이크아웃이 이뤄진다. 그런데 일회용 컵이 아닌 머그컵에 나온다. 그럼 머그컵을 들고는 2차선 도로 건너, 바다 쪽에 있는 책상 겸용 초등학교 의자로 이동해 앉는다.

책상 위에 책 대신 커피를 두고는 바다를 보며 마신다. 돌아갈 때는 머그컵을 반납한다. 테이크아웃 카페인데 일회용 컵을 쓰지 않고, 월정리해변 전체가 카페의 실내가 되는 셈이다.

 

아일랜드조르바는 그 독특한 시스템과 더불어, 바다 쪽 도로 경계에 의자와 한 몸을 이룬 초등학생용 책상 때문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신의 한수였다. 월정리 해변에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물빛이 정말 아름답다. 모래도 곱다. 책상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주변의 풍광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조르바'의 커피답다. 그런 까닭에 책상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그 자리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SNS와 블로그를 타고 퍼지며 월정리해변이 유명세를 탔다.한 동안 제주 해변 곳곳에 그 작은 의자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때는 월정리해변에 아일랜드조르바 하나였다. 지금 월정리 카페거리를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아일랜드조르바의 세 여성은 각자의 길을 갔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통을 이어, ‘고래가 될 ’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고래가 될 카페는 실내가 있었지만 여전히 바깥 자리 해변이 명당이었다. 자연스레 월정리 해변은 여행자들의 거대한 놀이터로 변신했다. 제주의 치앙마이나 카오산로드라고 할까.

8월 15일에는 하루 종일 여행객들과 인디밴드들이 어우러진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바다 쓰레기 한봉지를 입장료로 받는, 바다와 함께하는 친환경 페스티벌이었다. 유튜브에 월정리블루스를 검색하면 그때 정취를 느끼실 수 있다. 2016년 문을 닫을 때는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한 사람은 평대리로 옮겨 같은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농가주택을 개조한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그곳이 지금 디앤디파트먼트제주에 원두를 제공하는 아일랜드조르바고, 아일랜드조르바의 명맥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월정리 카페 거리

아일랜드조르바 그리고 이어진 고래가될 카페는 제주의 카페 이전에, 제주로 이주해 온 젊은이들이 제주를 지키고, 제주라는 공간과 조화롭게 살아보고자 모여드는 아지트 같은 장소였다. 현재의 제주가 상업화됐다는 평이 나오는 건, 아마 그때와 지금의 정서적 온도 차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디앤디파트먼트제주에서 쓰는 원두는 ‘아일랜드조르바’라는 카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가까운 제주 커카페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앤디파트먼트제주는 ㈜아라리오가 파트너십을 이룬다. 아라리오제주 탑동시네마와 이웃한다. 제주맥주를 만드는 맥파 브루잉과도 이웃한다. 블록을 이루고 있어 구시가인 탑동 문화예술의 부활이 기대된다.

디앤디파트먼트제주의 스토어 역시 디자인 미술관에 온 것 같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과거의 물건, 생활용품들이 마치 작품이나 굿즈처럼 전시된다. 마르샬 뒤샹이 소변기를 미술관 안에 전시하는 순간 그것은 ‘샘’이 듯, 이곳 역시 일상의 물건이 재발견된다. 지역 본질의 디테일을 철저하게 해부한 다음, 재조립하여 그것이 갖는 장점을 돋보기로 들이대듯 부각시켜 보여준다.

 

그렇지만 딱 일본스러운 느낌이 있다. ‘디앤디다움’이라는 말은 ‘지역다움’이라는 뜻이 있지만 ‘디앤디스럽다’는 말에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일본스럽다’는 의미 역시 담겨 있다. 지역색을 잘 살려 디자인하는 장기가 있지만, 일본문화가 갖는 심플하고 정갈한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tㅡ

우리나라 첫번째 프로젝트인 디앤디트먼트서울은 지역색이라고 정의할 때 정체가 모호하다. 서울은 이미 세계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국제도시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그 안에 공존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이들이 살아가며, 그것이 서울의 지역색으로 분류될 수 있기는 하다. 그래서 디앤디파트먼트서울은 ‘대한민국’이라는 상징 안에서 지역색의 디파트먼트인 양하다. 또한 그래서 서울이라는 지역색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제주는 좀 다를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색이 가장 강한 곳이 제주다. 근거로 들 수 있는 게 사투리다. 제주는 아직 제주방언이 존재한다. 다른 지역 사투리와 달리 육지 사람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말은 문화를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제주는 독특한 색과 문화를 가진 지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디앤디파트먼트제주는 제주와 디앤디파트먼트라는 ‘센 캐(센 캐릭터)’들이 맞붙은 디자인 전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강한 지역색과 지역색을 가장 잘 다루는 프로젝트팀, 과연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까? 아직은 코로나로 인해 디앤디파트먼트의 본진이 완전히 가세했다고 보기는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향후 1~2년 디앤디파트먼트제주는 제주를 관전하는 즐거움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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