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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2

내 안에 당신을 여행하는 나는

Prologue


몇 해 전 오월의 일이다. 씩씩했던 엄마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내게 너무도 큰 산이어서, 나는 사막 가운데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동생이 외국에 있어 장례를 미뤘다. 유예된 이틀은 온전히 슬픔으로 꽉 들어찼다.


당신은 울다 잠든 나를 깨우고 밥을 먹이고 등을 다독였다. 창밖은 말간 봄이었다. 베란다 너머 감나무에 하얀 감꽃이 피려 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날, 감 홍시 열 개를 먹었다 자랑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당신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옷을 갈아입히고 신발을 신게 해서는 집 밖으로 이끌었다. 동네를 걸으며 곁에서 부러 많은 말을 했는데, 그러다 할 말이 없어지면 말 대신 내 손을 꼭 쥐어주곤 했다. 내 생에 가장 따뜻했던 산책. 때로 희망은 슬픔 가운데 생겨나기도 했다. 


다음해 사월 오일, 우리는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결혼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그토록 어려웠던 일은,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종종 엄마를 떠나보내던 날들을 떠올리다가 당신에게 묻곤 한다.

“사랑이 뭘까?”

그날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사랑의 힘이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젤리처럼 말랑하고 캔디처럼 달콤한 사랑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의리!”


그리 말한 후 당신이 팔을 가로질러 뻗는다. 우리는 서로의 팔을 ‘크로스’하며 웃는다. 이제는 웃을 수 있다. 슬픔이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이 웃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돌아보니 대견한 시간이었다. 

“산책 같기도 하고.”

또 의리가 무얼까 하면 어김없이 그날의 산책이 떠오른다. 위로는 공감의 마음일 텐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산책처럼 소소한 것일 때가 많다. 그저 같이 나란히 걷는 일. 돌아보면 삶의 고비마다 가까이에 있던 누군가는 그날의 당신처럼 내 손을 잡아 바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러했을 것이고, 가족이 그러했을 것이고, 친구가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내밀한 슬픔들을 그렇게 견디며 지나왔을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는 여전히 참 슬프다. 시간이 약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가끔 그 자리를 쓰다듬는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무력하고 쓸쓸해서 좀체 잊히지 않는다. 그러고 있으면 이내 가만히 포개어지는 손이 있다. 괜찮아?라고 묻는 손. 쓸쓸한 건 나쁜 게 아니잖아, 라고 말하여주는 손. 당신의 손길이 따뜻하고 고요해서 나는 다시 산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다. 나는 오늘도 여행을 하고 책을 꺼내 읽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슬픈 말들에 밑줄을 긋는다. 가끔은 당신과 함께 여행을 하고 산책을 한다. 슬픔의 바깥에서 슬픔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슬픔은 따뜻하기도 한 거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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