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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2

우연의 밥집


# 봉평

봉평의 한 식당이었다. 활짝 열어놓은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이른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그날 다녀온 장소들을 되돌려 보고 있었다. 

‘어!’

식당 손님 중 한 사람이 놀라 말한다. 곧 여기저기서 ‘어!’ ‘어!’가 이어진다. 식당 전체가 어수선하다. 제비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날아다닌다. 몇 바퀴 돈 다음에는 입구 위 쪽창을 향해 연신 머리를 부딪친다.

‘낮게 날아야지.’

‘문으로 나가야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응원한다. 하루 끝에 지쳐있던 그들의 눈이 반짝인다. 조금씩 들썩인다. 하지만 제비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 제비는 고집스레 쪽창을 향해 머리를 부딪친다. 

“불 좀 끌게요.”

태연하게 지켜보던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전등을 끄자 안이 바깥보다 어둡다. 제비는 조금 더 방황하더니 그제야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날아간다. 누군가 박수를 친다. 당신과 나도 따라 박수를 친다. 식당 안 모두가 웃는 얼굴이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오며 주인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제비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태연하고 능숙했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 해 전 제비가 식당 처마에 집을 지었다. 며칠 지나 아침 문을 여는데 제비집은 부서지고 새끼제비 두 마리가 식당 입구에 떨어져 있었다. 아주머니는 새끼제비들을 조심스레 안아 식당 안으로 들였다. 계산대 옆에서 사나흘 육회를 먹여 키웠다. 제비는 곧 기력을 찾고 날았고 계절이 바뀌자 떠났다. 


다음 해 제비는 식당 앞에 다시 집을 지었다. 그 새끼 제비가 어른이 돼 돌아온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다음 해에도 제비가 집을 지었다. 대대손손. 올해가 3년째다. 새끼 제비들은 첫 비행을 시작하고는 어김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주머니는 그때마다 전등을 껐다. 

해 진 거리에 나와 처마 밑 제비집을 쳐다본다. 새끼 제비들이 재잘댄다. 다음 봄에도 식당 안으로 날아드는 제비를 볼 수 있을까. 옛 이야기 속 흥부가 한 선행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 게 아니라, 그저 제비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 것일 수 있겠다. 우리는 가끔 찾는 이 마을에서 이집의 단골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 횡성

횡성의 한 식당이었다. 제법 소문난 맛집이었다. 창가 자리라 바깥이 잘 보였다. 주차장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세우고 있었다. 그는 뒷좌석에 고정한 상자에서 쪽파 한 단을 꺼냈다.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는 사장님을 찾는다. 쪽파 한 단을 받은 사장이 5000원을 건넨다.

“호박도 좋아.”

할아버지가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한다.

“주세요.”

식당 주인이 답한다.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자전거 뒷자리 상자를 뒤적여 애호박 세 개를 꺼내 온다. 식당 사장이 다시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신이 나 식당 밖으로 나간다. 그는 자전거에 올라타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다시 자전거를 세운다. 그리고는 상자를 뒤져 이번에는 대파 한 단을 꺼낸다. 당당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다시 사장을 찾는다. 대파도 파시려나? 

“이건 서비스야.”

모두가 들을 만큼 큰 소리다. 사장이 웃으며 감사하다 답한다. 할아버지는 들뜬 채 자전거를 타고 멀어진다. 


사장은 할아버지가 나가고 우리 곁을 지나며 멋쩍은 듯 웃으며 이야기한다.

“막걸리 값 벌겠다고 계속 오시네요.”

잠시 후 된장찌개가 나온다. 찌개 안에 호박이 보인다. 당신과 나는 눈을 맞추며 ‘혹시?’한다. 한 입 뜨니 호박이 달다. 우리는 다음 이 도시를 찾을 때도 이 식당에 들리자 다짐한다. 막걸리 맛을 아는 주인이 하는 식당이니, 내 여행 또한 적당한 취기로 채워줄 거라 확신하며.


# 훗카이도

끝나지 않은 일 때문에 여행 내내 숙소에서 일하며 보낸다. 이럴 거면 떠나오지 않았을 걸. 짜증과 화를 섞어가며 후회한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마저 지나 있다. 무작정 처음 보이는 밥집에 들어간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잇던, 그 여행의 마지막 식사였다. 


두 할머니가 운영하는 보통의 동네 밥집이다. 늦은 점심을 먹던 두 사람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덮밥 한 그릇이 놓인다. 흔한 덮밥이다. 그런데 밥 위에 계란 프라이 두 개가 올라와 있다. 모든 이에게 계란 하나 더! 든든하도록! 두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인지, 나의 행색이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없다. 밥을 먹고 나니 엿새 동안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녹는다.


우리의 사랑도 숨이 차면 쓸쓸하다. 애쓰지 않아도 숨이 넘어갈 텐데. 뭘 그리 열심히 살아내려 노력하나 싶다. 그러다 이런 곳의 밥 한 그릇을 마주하면 적잖이 위로가 된다. 삶은 ‘열심의 결과’가 아닌 ‘무심의 선물’이다. 작은 생명을 보듬을 줄 아는 이가, 삶의 심심한 위트를 아는 이가 건네는 밥은, 그냥 밥이라기보다는 등을 두드리는 응원소리 같아서, 사랑도 뱃심이라는 정성의 꾸지람 같아서, 밥알들이 입 안 가득 산소방울처럼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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