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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2

하이파이브 그리고 여행의 짝


카누를 타기로 한 사람은 그와 나 둘 뿐이다. 

“두 분이 짝이 돼야겠어요.”

카누 조교가 말한다. 그는 일흔 네 살의 노인이다. 팔뚝이 굵고 허리가 꼿꼿하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그이와 비슷한 나이였겠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짝이 됐다. 그가 카누 앞자리에 앉는다. 내가 뒤에 앉았다. 강사는 뒤에 앉은 사람이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 더 노를 저어야 할 거라고 덧붙인다. 그는 내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한다. 나는 엉겁결에 인사를 받는다.

배운 대로 노를 젓는다. 카누가 천천히 물길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엇박자가 나던 그와 나의 노질도 서서히 나란하다.

“호흡이 잘 맞네요.”

나는 그에게 말한다. 그가 크게 소리 내 웃는다. 고요한 호수가 살짝 일렁인다. 우리는 함께 노를 저어나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일 년에 한 차례 일주일 동안 가을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사는 게 바빴다. 첫 여행이 예순 일곱 살이었다. 첫 여행지는 전남 목포였다. 막상 목포에 도착하자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가 택한 방법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행 온 또래 노부부를 보고는 말을 걸었다. 같이 여행하지 않겠냐고. 함께 다니며 택시비도 아끼고 밥값도 아끼자고. 그 부부와 함께 목포를 여행하고 홍도에도 다녀왔다. 첫 여행이 끝났을 때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 8년째, 가을이면 일주일씩 여행을 한다. 


처음에는 아내가 수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아내와 함께 떠났다. 여행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혼자 떠난다. 아내도 그러려니 한다. 대신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에는 반드시 아내를 위한 선물을 산다. 그래봐야 지역 특산물이다. 양구펀치볼마을에서 양구 특산품 시래기를 샀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혼쭐이 났다. ‘그 흔한 시래기를!’ 다음에는 평창에서 황태를 샀다. 그때는 아내가 좋아했다. 그 후로는 아내가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재료들을 산다. 예순 일곱에 억울해서 떠난 첫 혼자 여행, 두고 온 아내를 위해 시래기를 사고 황태를 사는 남자, 아직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여행과 사랑 이야기였다, 


카누가 반환점에 다다른다. 우리는 강사가 가르쳐준 대로 반원을 그리며 배의 방향을 튼다. 그가 순간 긴장한다. 방향을 헷갈려 거꾸로 노를 젓는다. 하지만 다시 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10분 정도 지나 그와 나는 잠시 노를 놓고 풍경을 즐긴다.

“와, 좋다.”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의 첫 마음이 궁금하다. 나는 뒤늦게 처음 여행을 떠난 이유를 묻는다. 그는 예순을 넘자 몸이 자꾸 약해지는 걸 느꼈다. 그 사실이 조금 억울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렇지. 그보다 절박한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처음 나올 때는 겁났어요. 이제는 할 만 해. 그러길 잘 했어. 도전하길 잘 했어.”

광고 밖에서 ‘도전’이라는 말을 듣는 게 오랜만이다. 그는 어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며, 아침에 일어나 홀로 빵을 굽고 잼을 바르고 우유를 마신 아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또한 도전이었겠다. 오늘 나와 카누를 탄 것처럼. 


우리는 다시 호흡을 맞춰 노를 젓는다. 배는 천천히 원점으로 향한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그가 먼저 카누에서 내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내린다. 그가 힘차게 두 팔을 뻗어 올린다. 다시 광고의 한 장면 같다. 

“야~ 좋다! 해냈어! 자, 하이파이브 한 번 합시다.”

그가 나를 향해 한쪽 팔을 뻗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손바닥을 맞부딪친다. ‘짝’하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누군가와 ‘하이파이브’를 한 것이 무척 오랜만이다. 손끝이 얼얼하고 따뜻하다. 


카누장을 나와 그의 뒷모습을 또 한참 바라봤다. 씩씩한 여행자. 나는 햇빛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하늘로 펼친다. 손가락 다섯 개를 활작 편다. 

'하이파이브.' 

엄마, 그곳에서도 여기가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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