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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2

내가 사랑에게 '했던 짓'



친구가 사는 동네는 바다 마을이다. 여름 한철 민박으로 먹고 사는, 자그마한 시가지를 가진 동네. 당신과 나는 친구를 따라 바다 산책을 나섰다가, 친구의 친구이기도 한 동네 꼬마들을 만난다. 


“여기서 뭐해?”

친구가 묻는다.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어요.”

친구를 도와 친구의 물건을 찾고 있는, 분실마저 진귀한 경험인 아이들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우리만 서둘러 근심한다.  

“어떻게 찾으려고?”

“했던 짓을 반복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천진한 답을 듣고는 웃고 만다. 정답이 맞는데 너무 정답이라서. 또 그렇게 지난 궤적을 더듬어 결국에는 찾지 못한 기억 또한 많아서. 우리는 아이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나는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아이들이 향하는 방향이, 아이들의 행동이 조금 전까지 ‘했던 짓’이구나 하며. 


친구와는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당신과 나는 친구의 동네를 벗어나 조금 더 한적한 바다를 찾는다. 이른 봄날의 이름 없는 해수욕장은 사람 없어 한적하다. 우리는 해안 끝 너럭바위에서 쉬기로 하고 모래사장을 걷는다. 당신은 몇 걸음 걷다 조가비 하나를 주워든다. 특이한 모양이 예쁘다며. 그 다음부터는 서너 걸음에 한 번씩 몸을 숙인다. 나는 너럭바위에 다다라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편다. 당신은 그제야 후회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책 한 권을 가져오겠노라며 뒤늦게 차로 돌아간다. 양손 가득 조금 전에 주운 조가비와 돌과 파도에 밀려온 나뭇조각을 움켜쥐고서. 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 있다 이야기의 한 단락이 끝나고 고개를 든다. 제법 시간이 흘렀을 텐데. 모래사장은 텅 비어 있고 당신은 보이지 않는다. 나른해서 불길한 기운. 괜한 걱정이 앞선다. 조금씩 두근대는 가슴.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건다. 몇 번의 발신음. 당신은 곧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는다. 또 조가비를 줍고 있노라는, 예쁜 돌들을 주웠노라는 당신의 자랑들. ‘어디?’하고 묻자, 바닷가 그늘진 곳에 웅크려 있던 당신이 일어난다. 그곳에서 자그마하게 꼼지락대던 그림자가 당신이었구나. 너른 모래사장 그늘진 곳에서 홀로 손을 흔드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놓인다, 


당신은 책 한 권을 들고 내게로 오는 길에도 다시 몇 번이나 몸을 숙인다. 몇 걸음 걷고는 고개를 숙여 조가비를 줍거나 파도에 쓸려온 나무 조각을 줍거나 한다. 버려진 것들, 쓸모없는 것들에서 필요와 아름다움을 찾는 일. 그런 당신이 신기해 몇 번인가 따라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 없고 무료한 일들, 시간을 쫓지 않아야 할 수 있는 일들. 당신만큼은 아니어도 엄마 또한 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돌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를 건져내 나를 자라게 한 사랑들. 내게 아름답다 말해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니 내가 사랑 앞에 ‘했던 짓’을 알겠다. 읽지 못했던 마음들, 알고서도 지나친 마음들, 당연하다 여겼던 이해들. 내게서 떠났던 많은 사랑들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거나 떠난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들. 그것을 돌이켜 좇아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사건은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되곤 한다. 상실의 마음이 분실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외로운 마음으로 꽃들을 맞을 때 봄의 온도는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다. ‘지난 봄’과 ‘지난봄’의 거리만큼. 그래도 당신이 곁에 있어 봄은 아직 지지 않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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