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석 Jun 10. 2019

발전과 상실

낭만을 잃어가는 시대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10년 전과 지금이 다르고, 5년 전과 지금이 다르다.

이제 특정(가령 핸드폰과 같은) 분야는 몇 개월 단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대로 가다 보면 곧


'어제와 달라진 늘을 맞이하는 시대'가 올 것만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 편치만은 않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변화에 민감히 반응하고 적응해야

이 시대에서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겠지만,


사회의 문화 발전과 개인의 의식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그냥 경쟁적으로 발전만을 추구하는 '속도전'식의 발전에는 불만이 많다.


물론 삶이 편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류의 발전들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 때문에 오히려 삶이 지나치게 단순해지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많은 분야에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중 가장 독보적으로 인간 삶의 편리를 만드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이 아닐까 싶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듣고 있는 인공지능.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전문적인 기술을 다루거나 실현 가능성을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철저한 인문 계열(비전공자)로서, 또는 인공지능의 수혜자가 될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이제 말할 이야기의 전제는 다음 문단부터 예시로 제시하게 될 기술들이 실현 가능하며,
이러한 종류의 기술을 감당할 만큼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실현 가능하다는 가정 하에서 생각해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공지능의 시대는 곧 '상실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몇 가지의 상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 첫 번째는 '노동의 상실'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왔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열매를 채집한다든지 무리를 모아 작은 동물들을 사냥한다든지.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노동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노동의 의미와 가치도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이제 인간이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들 예측한다.

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500만 개 넘는 일자리가 로봇, 인공지능,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없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도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이 직업의 모든 작업이 컴퓨터에 의해 수행 가능한가'를 분석한 결과 미국에 있는 직업 중 47%가 10∼20년 안에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거나 직업의 형태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hop0sDTFk)


사실 우리는 이미 실생활 속에서 많은 인공지능을 경험하고 있다.

애플 시리/삼성 빅스비, 구글의 검색 엔진, 페이스북의 얼굴 인식, 개인 맞춤 영화 추천 등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의 영향이 미치는 현실을 살고 있다.


노동이 없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겪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현재의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볼 때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령 노동 상실의 예를 하나 들자면 금융권에서의 로보 어드바이저를 들 수 있다. 물론 금융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이 현재는 극히 일부에서만 진행되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안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활용으로 인한 인력 대체 현상 역시 크게 우려할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운용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수준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인공지능의 수준에 한참 모자란 수준의 기술력임에도 불구하고 그 활용의 신뢰도와 효율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노동에서 삶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찾았던 인간은 이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혹은 특정한 활동이나 행동을 통해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 혹은 사유를 통한 가치의 발견에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치 생산 수단의 정의가 새롭게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습의 상실이다.

조금 확대 해석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좁은 견해로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표현했다.


가령 자율주행 자동차라던지,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8/21/20160821001383.html?OutUrl=naver


귀에 꽂으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는 통역기라든지 (물론 아직 상용화가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o9aEi2_fSWM 


이전과는 다르게, 경험과 학습의 누적을 통해 가능했던 하나의 능력이

앞으로는 기술과 융합되어 단순한 도구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자율주행을 통해 인간이 자동차로 발생시키는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고

자동통역기를 통해 동일문화권이 아닌 외국인과 문화/사회적으로 보다 편히, 깊게 교류할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한 능력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이 주는 인내의 가치는 잃고

아무 노력 없이 결과만을 바로 얻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할까?


과정 없는 결과가 인간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또 다른 예는 인공지능 자체로 인한 영향이라기보다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인해 도태될 인간을 생존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나왔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 발전의 대안책으로 ‘전자 그물망(Neural Lace)'을 고안했다. 이를 위해 뉴럴 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전자 그물망의 개념은 간단히 말해 뇌에 전자 칩을 심고 그 칩을 통해 이제는 지식 역시 책을 읽거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입력과 출력의 형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즉 위와 같은 관점에서 탐구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139636



이러한 노동의 상실과 학습의 상실은 궁극적으로 인간 낭만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생각이 들고, 더 나아가 인내의 상실로 이어진다.


많은 분야에서 과거에 비해 상당히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가치가, 혹은 과정이 주는 경험들이 파생하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추억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발전이라는 급류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 아쉽다.

이러다 삶의 의미마저 단순화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