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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Nov 12. 2019

사랑_평범함의 특별함

고마웠어.

2019년 11월 11일, 꽤나 쌀쌀한 바람이 부는 월요일의 저녁.


4년을 함께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소중한 사람.


눈물범벅 콧물 범벅으로 통화를 마친 뒤 생각을 정리할 마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이어폰을 껴고 차지만 따뜻한 겨울바람에 마음을 녹여내기 위해 밖을 나섰다.  


고요한 거리.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대 안의 거리는 적막하고 고요했다. 저녁 시간을 활용해 저만치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리에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사연 있어 보이는 어깨로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나뿐이었다.


사연 없는 커플이 어디 있을까?


올해 초, 서로만 바라본 4년이라는 시간들을 잠시 뒤로하고 각자의 삶에 좀 더 집중한 뒤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갖게 된 1년 간의 공백기.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너무나도 많은 추억을 갖고 있는 우리가 서로 없는 삶을 사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 오늘, 우리는 연인보다는 소중한 친구로 남게 됐다.


애틋하고 생각만으로도 설레었던 순간들과 마음 아프고 얼굴 찌푸려지는 고통의 순간들이,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그 순간들 찬 바람과 함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 이제 끝이네.'

'우리처럼 다양하고 재미난 일 많이 한 연인이 또 있을까?'라는 웃음,

'그녀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고 간다.


그리고 운명이나 우연 따위 믿지 않고 뭐나 줘버리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인생에서


왜인지 모르게 문득 스쳐 지나간 한 가지 생각


"맞다. 책 서평 써야 하는데.."


지난 11월 4일 받은 나승현 작가의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 책의 서평을 완료하기로 한 날 


오늘.


왜 하필 오늘이지?
왜?
왜 오늘이야?  


더군다나 방금 헤어진 사람이 무슨 사랑 관련 책의 서평인 건지 애초에 무엇보다도 이 시점에서 서평을 쓴다는 생각 자체가 제정신이 박힌 사람의 보편적 사고인지.
 
사랑 관련 책 쓰다가 혼자 감성팔이해서 헤어진 거 온 세상에 다 티 내고 사람들에게 홍보하고자 하는 생각인 건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게 꼬인 머릿속을 이놈의 것이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무엇보다도 나에게 소중했던, 그리고 여전히 소중한 내 친구인, 이제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마지막으로 추억하는 것으로 그 소중한 관계를 맺음 내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평소 글 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시의 부적절한 말도 안 되는 호기심.


요즘 말로 관종 같은 글이 나올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헤어진 평범한 연인의 이야기겠지만 서로에게는 그 어떤 연인보다도 특별했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든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회상해보고 싶었다.


미친듯한 찌질함으로 이불 킥을 하는 멍청함도 하루쯤은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것이 바로 이별의 날인 법이니까.


하, 숙소 돌아가자..


노트북을 켜고 핫스팟을 켜 브런치를 켰다.


로그인을 하려고 보니 뜨는 페이스북 로그인 페이지. 아, 어제 여자친구랑 우리 관계 고민해보자고 이야기 나오고 탈퇴했었는데..

멍청한 생각에 잠깐 멍- 때리다가 이내 다시 로그인을 하고


책을 다시 펴 찬찬히 목차부터 다시 살펴본다.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는 KBS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의 메인 작가인 '나승현 작가'가 라디오 속 코너 '연애일기, 만약에 우리'를 통해 접수된 수많은 사연들 중,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은, PART1. 서로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풋풋한 시작 단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PART2. 너라서 행복하고 너라서 아픈, PART3. 그럼에도 낭만을 꿈꾸는 현실의 연애, PART4. 사랑과 이별의 미묘한 거리 총 4가지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눈치챘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애의 과정과 단계로 구성된 책이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옛날 생각이 났다.

PART 1.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대하여


2014년 9월 14일, 한창 꿈 많은 이상주의자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현실주의자 두 친구가 사랑을 시작했다.


남자는 생각이라는 걸 제대로 갖고는 처음 시작해본 연애.

여자는 전 연애로 상처를 받았지만 용기를 내 다시 시작해보는 연애.


설렘 가득한 초반이 될 법도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남자는 처음 해보는 연애에 서투르기만 했고,

상처 가득한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는 호기심과 설렘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의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러나 남자의 속 모를 꾸준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자의 용기 때문이었을까?

힘겨운 2개월이 지난 후 서로의 마음을 확신한 두 남녀는 학교 학생회관 엘리베이터에서의 뽀뽀를 시작으로,

그제야 누구보다도 열렬히 사랑을 시작했다.


PART 2. 너라서 행복하고 너라서 아픈


영화 '노트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극 중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앨리(레이첼 맥아담스)가 미친 듯이 다투다가 뺨을 때리는 지경까지 가는데 이내 곧바로 격정적으로 키스를 하는 장면.


이 장면만큼 짧지만 강렬하게 사랑하는 연인 관계를 표현해주는 장면이 또 어디 있을까?


너와 데이트를 마치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생각에 집 앞 공원을 빙-빙-빙 돌고 또 돌았던 시간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잘 시간이 되어 통화를 마치자니 너무 아쉬운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핸드폰 켜고 자자'하고 잤던 긴-밤,

무슨 고집인지 무슨 생각인지 네가 싫다고 하는 행동들을, 챙김 받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원인 미상의 마음으로 반복해 를 정말 화나게 만들었던 것들,

다른 남자와의 대화, 다른 남자와의 사소한 관계에도 질투가 나 괜히 토라져 에게 모든 화살을 퍼붓고 상처 주는 말을 했던 순간들,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 행복과 고통의 순간들을 창의적으로 창조해낸다.


PART 3. 그럼에도 낭만을 꿈꾸는 현실의 연애  


4년이 흐르고 5년 차에 접어든 순간, 서로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주어진 환경은 더 이상 꿈 많고 즐거운 이야기만 할 수 있는

대학생 풋내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는 현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직장과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과정.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났던 둘이

3일에 한 번, 1주일에 한 번, 특정 기간에는 3개월에 한 번 만나는 날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환경에 점차 익숙해져 간 두 사람.


자연스러운 현상인 걸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인 걸까?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환경과 그것에 익숙해져 가는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당황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서로의 이별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어느 순간 진담 반 농담 반처럼 나왔던 이야기들,


'너와 헤어져도 잘못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소중한 친구로는 꼭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세상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고 해도 나에겐 그만큼 소중하고 의미 있는 너.'


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우리 관계를 돌이켜봤을 때,

이 말들은 거짓말이나 그저 어린 마음에 갖는 치기 어리고 바보 같은 다짐이 아니었다.

연인이기 전에 진정한 친구로서, 또 동료로서의 소중함을 4년 동안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왔기 때문. 연인 관계가 끝났을 때 우리가 마주할 친구, 동료로서의 그 소중한

추억들을 잃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두려워서 계속 그런 말들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 초,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갖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이겠지?


그렇게 낭만을 꿈꾸는 현실의 연애를 우리는 거쳐왔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별을 마주했다. 


PART 4. 사랑과 이별의 미묘한 거리


이 서평을 마치고 시간을 돌이켜보니 지난 4년의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순간은

처음 커플링을 주거나 첫 키스를 했던 짜릿하고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다.


평범한 순간들이다.


가장 평범했던 그 순간들이 지금까지 마음에 계속 남는다.

그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시간이 가장 묵직하고 따뜻하게 마음속에 남아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하루를 마치고
너희 집 앞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재잘재잘 이야기했던 그 순간.


집에 들어가는 널 붙잡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꼭 안고 있었던 그 순간.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늦게까지 데이트를 한 뒤
서로의 손 꼭 잡고 사랑하는 널 집에 데려다주었던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설렘 가득히 걸음을 재촉하고

하루 종일 카톡으로 싸워 너무 밉고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한 채로 만나게 되었을 때,

다가오는 연인의 모습에 모가 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반가움에 웃으며 달려가고.


연인 생각에 혼자 길을 지나가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오고

또, 이별 후에 세상을 잃은 것처럼 눈물 흘리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주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타인이 보는 타인의 사랑은 원래 평범하다.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람은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뎌지고 마음이 굳어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중요했던 감정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씩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마주하기 때문에.


그러니 타인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그 평범한 순간들은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의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이 책도 역시 특별하진 않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


그래서일까, 더 와 닿는다. 우리들의 연애는 일상을 채우는 평범함에서 오는 특별함에 있는 것이니까.


영화나 소설처럼 특별한 장치나 구성 혹은 연출은 없지만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영화 같은 사랑을 마주하고 경험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추억이 이 책에 담겨있다.


맞아, 그렇게 시작했지. 사랑의 순간에는 저럴 수 있어. 아,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맞아, 행복했었지.


때때로 책이나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통해 특정 장면에서, 내 경험이 떠올라 그 이야기가 추억과 공명해 특별함이 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우연처럼 만나
운명처럼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


이것만큼 평범하지만 가슴 설레고 특별한 일이 인생에 또 있을까?  


그만큼 우리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그 어떤 단어보다도 달콤하고 가치 있는 그 무언가다.  


그래서일까?


아직 이런 사랑이라는 단어로 가슴 설레고 한 없이 슬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사랑 하나로, 이별 하나로 이렇게 오글거리고 관종 같은 글을 쓸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아직 어리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까.  


여러분들도 저마다 갖고 있는 각자만의 사랑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 비추일 그 사랑 이야기가 누군가와 만나 특별함으로 공명될 수 있다.


그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을 함께 경험하게 해 준 그 사람에게 꼭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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