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미래 정의와 고민
이번 가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석사과정에서의 첫 학기를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다보니 정신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23살 어린 시절부터 바라고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왜인지 모를 흥분감과 열정이 생기기도한다.
미래전략이라는 단어는 미래와 전략이라는 각기 다른 정의를 갖는 단어로 구성되어있다.
이전에는, 그리고 입학하고나서도 단 한 번도 이 두 단어의 구체적인 정의나
내 스스로 규정짓는 두 단어의 정의를 고민해보지 못했다.
나에게 미래라는 단어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 의미를 나에게 부여하는가?
다행히도 첫 학기에 이슈기반 미래예측 과목을 진행해주시는 '강홍렬' 교수님의 과제로
이 미래라는 단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미래전략대학원에서 수강하면서 생기는 의문과 고민들을 한 번 나누어 보고자 한다.
미래를 단순한 예측 대상으로 놓고 아무런 변수의 존재 없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가만히 살펴보기만한다면 그것은 어려운 연구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래가 미래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 속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그 변수들이 각각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거나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있다.
그래서 미래 연구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바로 미래이기도 하다.
미래를 통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통제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노력 자체가 변수가 되어, 우리가 도달하고 예측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미로 갖는 미래는 결코 잡을 수 없다.
그것이 미래의 본질이고 속성이다. 결국 미래는 규정가능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상대적인 의미에서 유한함을 갖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한함에 가까운 시간적 개념인 미래 자체를 규정하고 이해한다는 사실 자체도 사실은 모순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호기심 많고 탐구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그나마 합의와 동의를 통해 미래를 이해 가능한 단어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고, 특정 학문에서는 약간의 예측이 가능하기도 하다.
역사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놓고 본다면, 거시적인 차원의‘반복’을 주목해 미래와 조금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되어 일어나는 사건들이 종종 있으며 그것은 특별한 변수의 영향을 받아 반복된다는 것에 원인이 있다기보다 그 원인은‘인간’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인간이라는 변수가 다른 변수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령 강대국의 출현과 몰락 세계 국가들 간의 분쟁이나 평화 등이 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개념 안에서 미래란 독립되어 있는 특정한 대상은 아니다. 미래 역시도 현재와 과거의 관점과 사례를 통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과거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고찰하는 것처럼 아래 표를 살펴보면
과거의 시점에서 그보다 과거인 대과거를 돌아본다면 그 대과거는 과거의 과거 시점이다. 또한 앞선 미래를 현재로 규정해놓고 지금의 현재를 돌아본다면 곧 과거인 것이다. 결국 재미있게도 과거는 곧 현재가 되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한다. 이는 곧 과거가 미래라는 재미있는 언어적 유희에 도달하기도 한다. 말 자체를 놓고 언어적으로만 본다면 미래는 곧 과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문적 개념에서 일(一)자의 시간 축 위에 놓여 있는 각각의 시간들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 미래, 현재, 과거라는‘시제’를 부여한 것이지 진짜 존재하는 개념 자체는 아니다. 과거는 곧 현재가 되고 현재는 곧 과거가 되며 대과거는 또 과거가 되고 미래는 다시 현재가 되는, 결국 하나의 시간이라는‘흐름’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과학으로 탐구할 수 있는‘대상’으로 그 관점을 갖기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시간을 파악하고 접근하는 비과학적 접근도 좋은 연구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흐름은 말 그대로 동적인 것이며 실체가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미래라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특별’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 자각’과‘인식(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개념이고, 미래라는 것은 인간의 불안함과 인생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안정감을 위해 파헤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식과 자아, 혹은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동물에게는(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에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동일 시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그들은 본능에 따라 또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인간 역시도 미래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래라는 생각은 인간이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고 자족이 되는 상황에서 나온 생각이지 싶다. 오히려 고대 사회나 현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 있었을 때는 동물처럼 나중은 중요치 않고 현재의 생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집단’의 개념이 생기고 사회와 국가 체제가 형성되면서 여유가 생기고 내 옆 사람과 동행하면서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현재 주어진 환경과 자원이 미래에도 나에게 있을 것인가, 현재의 안정과 평안함이 내일도 나에게 주어질 것인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내가 내일도, 며칠이 지나도,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미래 개념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결국 미래는 본래 존재하는 개념이라기보다 인간의 욕망에 따라 실체를 부여받은 인간만의 특별한 산물(産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