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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Aug 26. 2020

유한과 무한의 동시성-상대적 무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_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유한과 무한의 동시성에 한 생각을 정리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생각은 아니고 온전히 말의 논리에 따른 사고의 정리로 이해하면 좋겠다.


데모크리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물질을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다시 말해 무한한 횟수로 쪼갤 수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다음 이제 한 조각의 물질을 무한하게 쪼갠다고 상상해봅시다. 무엇이 남을까요?


크기가 있는 작은 입자들이 남을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그 물질 조각이 아직 무한히 쪼개진 것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그러므로 크기가 없는 점만이 남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이 점들을 한데 모아서 애초의 그 물질 조각을 만들어봅시다. 크기가 없는 점 두 개를 한데 모아도 크기가 있는 사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세 개로도 안 되고 네 개로도 안 되죠. 사실 아무리 많은 점을 모아봐도 크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점은 크기가 없으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물질이 크기가 없는 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점을 모아도 크기를 지닌 것을 결코 얻을 수 없으니까요. 데모크리토스는 단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 어떤 물질이든 유한한 수의 낱낱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조각들은 유한한 크기를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원자인 것이죠.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_카를로 로벨리_p.29)

이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유한 속의 무한_유한과 무한의 동시성에 관하여.


상기 책에서 서술된 '유한한 크기를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분할할 수 없것'이라고 말하는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절대적 무한의 개념에 대한 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제로 무한한 '절대적 무한'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유한이란 개념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상대적 무한'이 존재한다는 전제.


결국 이 논리의 전제는 '절대성의 부재'.


절대적 개념이 사라져야 절대적 무한을 부정할 수 있고, 절대적 무한의 부재로 인한 상대적 무한의 개념이 나온다.


결국 무한이란  상대적 의미를 갖는 개념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유한과 대비해 상대적 무한성을 갖는 상대적 무한이 '유한 속의 무한'_'유한과 무한의 동시성' 개념의 기본 전제다.


함께 이 주제를 이야기 나눈 지인과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면서 과학적이진 않으나 보다 쉽게 일상적이고 직관적인 예 든 것은 눈 앞에 있는 쇼파였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쇼파는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 보이기에는 절대적 한 형태로 존재하는 쇼파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그 쇼파의 본질로 들어가 보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형태를 갖는 물질이 아닌 상대적 무한성을 지니는 그 무언가다. 국 그 쇼파의 본질 자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쇼파라는 물체 자체에도 절대성과 상대성이 동시에 존재하며 단지 그 물체를 보는 인지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개인적인 말로 정리한 것이 '유한과 무한의 동시성'이라는 말이다. 이 책은 이 개념에 기반해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은 미시적으로 보면 실제로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우리 인간의 유한한 인지 능력에 따른 형태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온 세상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유한함을 갖는 인간이 보기에는 절대적인 것들로 보일 뿐이라는 것.

 

이 논리 귀결 적어도 물질세계에서만큼은 절대적 구분은 없으며 절대적 진리 또한 없다 이어진다.


이를 조금 더 논리적으로 확장해보면 절대성의 부재, 즉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철학적 질문으로 귀결


더 나아가 절대적 존재란 없다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절대적 존재를 믿는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답이긴 하다.


다만 우리가 그 유한과 무한의 동시성을 역시나 유한한 개념으로 이해한 결과일 뿐, 그 속에는 결국 절대적 개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책에서 서술한 원자의  역시 엄밀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제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히 부피를 가지지만 더이상 쪼갤 수 없다라는 개념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는 무(無)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 무의 개념이 바로 절대성에 기반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유한과 무한의 동시성, 즉 유한함 속에 무한함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는 제논의 역성 중 하나인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을 반박하는 논리를 보면 이해가 좀 더 편하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양자역학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시적 관점을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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