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황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20. 2022

괴물 이야기

22. 07. 20

  혹시 그 소문 들으셨나요?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저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소문에 대해서 말이에요. 말도 마세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제 이마에는 정확히 다섯 방울의 식은땀이 맺혔었다고요.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걸 유령이라 부르지는 않겠죠. 식탁보나 커튼이라면 몰라도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여름의 햇님도 땀을 흘릴 만큼 쨍쨍한 정신을 가지고 있답니다. 여기저기를 떠도는 건 유령이나 소문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눈에 보인다면 소문도 더는 소문이라 부를 수 없다는 거예요. 맙소사, 그것들은 새까맣게 탄 냄비의 바닥보다 더 깊고 흉측한 몰골을 가진 무언가였어요. 저는 이제부터 그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이야기하겠어요. 뭐든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신이 그때의 악몽을 가져가 줄지도 모르니까요.     


  괴물의 새까만 몸뚱이로 보아 저는 그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죠. 그곳은 사람의 몸에서 숯검댕이가 묻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불의 무덤 혹은 잿더미로 불리는 가슴이었어요. 세상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머리에 불이 붙는데, 그렇게 되면 열이 올라 자꾸만 화를 내게 되고 생각이 하얗게 타버려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제때 끄지 못하면 불이 척수의 기름을 타고 가슴으로까지 옮겨 붙는 다네요. 괴물은 불 속에 기생해있다가 가슴이 살기 좋을 만큼 까맣게 타오르면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곳에 똬리를 틀죠. 뱀이 피리 소리에 반응해 춤을 추듯 괴물에게도 신호가 있는 데 그건 바로 한숨이에요. 한숨이 길면 길수록 괴물은 사슬 같은 몸을 더 길게 빼고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더군요. 그러다 숙주가 된 인간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려하면 순식간에 기력을 먹어치워 그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무기력해진 인간은 처음에는 표정을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꿈꾸는 법까지 잊게 되는 불쌍한 운명에 처하게 되죠. 잠이 죽음과 다른 게 뭐겠습니까. 꿈을 꾼다는 거 아닙니까? 꿈이 있어야 환상을 보고 하다못해 악몽이라면 깨어날 수라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꿈이 사라지면 잠에서 깰 수도 없어요. 헤어 나올 수 없는 잠은 죽음이고 거기에 빠진 사람은 시체가 됩니다. 움직이는 시체로 평생을 살아가는 거예요.     


  괴물이 꼭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죠. 하나가 있으면 둘이나 셋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왜냐면 인간의 불행이 그렇거든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겨우 산을 넘었더니 다른 산이 나오는 건 세월이 입증한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다른 괴물을 봤다고 해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고요.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그건 사람인 척을 하는 괴물이었을까요, 괴물인 척을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뭐가 됐든 끔찍했다는 거에는 다를 게 없지만요. 이렇듯 겉으로만 봐서는 누가 괴물인지 가려내기가 어렵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바로 그에게 도움을 구해보는 거예요. 요청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좋아요. 그럴수록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부탁을 받고도 딱딱하게 굳은 시체처럼 반응이 없거나, 지네처럼 바쁘게 다리를 놀려서 도망친다면 틀림없어요. 그는 상처를 부패시키는 무관심의 독을 가진 괴물입니다.     


  괴물이 창궐하는 무서운 시대가 됐습니다. 그렇다 해서 그들을 해칠 창을 들지는 말아요. 그들 또한 어떤 세월의 상처받은 영혼들일 뿐입니다. 예로부터 병든 사람은 자주 악마로 오인 되기야 했지만 당신까지 그래서는 안 돼요. 촛불 하나로도 어둠은 물러가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만국의 솔로에게 바치는 헌정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