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황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14. 2022

만국의 솔로에게 바치는 헌정문

22. 07. 14

  오늘도 내 우체통은 만원사례. 곧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은 기세로 부풀어 올라 있었어요. 덮개를 열었더니 역시나. 287통의 독촉장이 쏟아져 나왔어요. 이게 요즘 나의 일과예요. 엄마는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녜요. 아빠는 한숨만 푹푹 쉬죠. 친척은 애인은 왜 안 사귀냐고 물어봐요. 친구들은 누구라도 한 번 만나보래요. 아, 신이시여 진정 당신이 무정한 게 아니라면 나를 인생의 피로로부터 구원하소서. 아무래도 모두에게 나의 비밀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군요.     


  그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운명이었어요. 그날은 유독 밤하늘이 쓸쓸한 날이었죠. 나는 망원경으로 중력을 거스르며 우주를 헤엄쳤어요. 기적은 날갯소리도 없이 문뜩 찾아오는 건가 봐요. 내 시선은 줄에 묶인 망아지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됐죠. 그날 난 그녀를 봐버리고 말았어요. 비단 깃털로 자수를 놓은 우아한 날개와 섬섬옥수와 같은 일곱 손가락, 웃을 때마다 붉게 물드는 눈꼬리. 그녀야말로 나의 뮤즈. 내 사랑 그녀는 안드로메다 B-345행성의 아름다운 공주였어요. 사랑에 빠진 날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어딘가 나사 하나쯤은 빠지기 마련이잖아요. 그게 이번에는 내가 됐을 뿐인걸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잖아요. 그걸 좀 넓게 봅시다.     


  심장이 뛰는 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용기를 내지 않는 것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죄악이 될 것이 분명했거든요.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긴 안테나를 가져와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애절한 마음을 담아 또박또박 모스부호를 눌렀어요. 그녀와 나의 거리는 252만 광년. 하지만 언젠가 내가 보낸 전파가 그녀에게 닿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그때가 되면 나는 우주선을 타고 은하를 가로질러 그녀를 만나러 갈 거예요. 드디어 만난 우리는 우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겠죠.     


  그러니까 난 연인은 없지만 사랑을 하고 있어요. 나를 그녀에게로 데려가 줄 밤하늘 고독을 사모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녀와 함께 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보세요,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내가 외로움을 닮았다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원빈을 닮았다고 해주세요. 아무리 자식, 친구여도 그건 좀 아니다 싶죠? 그런 생각이 들거든 부디 외로울 거라는 말은 거둬주세요. 엄마, 아빠 언젠가 공주와 결혼한 지구별 왕자가 되어 두 분에게 저택을 선물할게요. 친구들아, 때가 되면 마차를 보내 너희를 우리의 궁전으로 초대할 거야.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겠어. 만약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이 사랑을 모르기 때문일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던 호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