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언어의 싹을 틔운다. 양수에 잠긴 까만 정적을 깨는 신생아의 울음소리. 그것은 탄생의 기적소리, 생명의 언어다. 수천, 수만 번의 옹알이 끝에야 마침내 결실을 맺는 아빠, 엄마, 두 마디. 그것은 관계의 언어다. 아기가 자신을 돌보는 이를 부모라 말할 때 둘 사이의 관계에는 특별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그 고백을 통해 돌봄의 관계는 가족의 관계로 도약한다. 언어는 존재의 촉매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청춘에게도 언어가 필요하다. 푸를 청(靑)자에 봄 춘(春), 새싹이 돋는 봄철이라는 뜻의 청춘(靑春). 봄의 본질은 굳은 것을 깨는 데 있다. 겨울의 창백한 정적을 깨고 만물을 지저귀게 하는 것, 얼어붙은 땅을 깨서 새싹을 돋아나게 하는 것이 봄이다. 청춘의 언어는 봄과 닮아있다. 죽음과 같은 침묵을 깨는 목소리, 녹이 슨 관습을 깨는 과감한 결단이 청춘의 언어다.
2020년 11월, 손끝에 서리가 낄 만큼 시린 겨울이었다. 밖에서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얼어붙은 잠을 자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다 우연히 그 아이를 본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 삽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동장군이 두들겨 단련시킨 단단한 땅을 삽 끝으로 깨기 시작했다. 무심한 내 마음을 사정없이 쪼는 듯했다. 그는 새끼 고양이를 땅에 누이고 흙으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그의 무언의 행위에서 청춘의 언어를 보았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는 가엾은 작은 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고 있다. 그들을 쉴 수 있는 평온한 곳으로 옮겨주고 명복을 비는 짧은 기도를 올린다.
이 세상 모든 청춘에게 청춘의 언어가 깃들기를. 그리하여 세상이 겨울에서 깨어나 봄을, 사회가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밝은 내일을 맞이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