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편지

이봐요, 시애틀씨 당신의 땅에는 몇 개의 0이 붙어있나요?

20대 후반이 되어가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나이는 자꾸 먹어만 가고 독립을 해야 할 시기는 다가오는데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집값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점점 요원해져만 간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본 부동산의 매물전단지. 실평수 25평, 매매가 7억. 7 뒤에 붙어있는 0의 개수를 세본다. 빼곡하게 붙어있는 8개의 0. 7천원에서 70만원 사이에서 0들이 들어왔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는 밀물과 썰물처럼 하는 내 지갑 사정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이다.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파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언제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다들 나이를 먹다 보면 그 정도 돈은 으레 생기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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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기준으로 서울의 중간쯤 되는 집의 가격은 못 잡아도 7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중산층 가구의 평균소득을 5천만원으로 잡는다고 하면 집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무려 14년을 먹지도, 입지도 않고 돈을 모아야 한다. 15년간을 감금된 채 군만두만을 먹은 올드보이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인 걸까.


한국의 기형적인 집 값의 원인은 60, 70년대 개발시기부터 내려온 부동산 투기열풍에 있다. 부동산을 사고 구매가 보다 더 높은 가격에 시장에 팔아 차익을 남기는 거래가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아버렸고, 사람들은 땅에 하나라도 더 많은 0을 붙이기 위해 역세권부터 이제는 숲세권까지 다양한 용어를 만드는데 열과 성의를 다했다. 그렇게 부동산 투기 열풍은 부동산 불패의 전통으로 굳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 전통이 모두를 위한 전통은 아니라는 것이 모두가 아는 학계의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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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 편지는 지금의 와싱턴 주에 살던 수꾸아미 족의 추장 '시애틀'씨가 1855년 플랭클린 피어슨 대통령에게 보낸 내용의 일부이다. 추장은 땅을 넘기라는 백인들의 요구에 자신들은 처음부터 땅을 소유한 적이 없기 때문에 넘길 수 있는 땅도 없다고 답한다. 그들이 땅을 소유하지 않은 이유는 땅이 자신들뿐만 아니라 초원을 달리는 야크부터 창공을 나는 독수리까지 그들의 친구들이 사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 걸렸던 청년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던 대형 현수막이 생각난다. 정부는 청년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청년임대주택 건설을 계획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임대주택이 건설되면 주변 땅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청년인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인디언들은 땅을 소유하지도, 값을 매기지도 않고 자연을 벗 삼으며 대지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땅들에 oo프리미엄, oo지역 역세권 등 온갖 수식어를 붙이면서도 자연은 고사하고 사람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혹독한 환경을 만들어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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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땅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에게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땅을 취할 권리가 있다. 이는 의·식·주에 해당하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세 가지 기본조건으로도 나타난다. 부동산 투기열풍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지금 부동산이 유통하는 것은 자산이 아닌 부동산 투기로 인해 빼앗긴 사람들의 주거의 자유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해 말도 안 되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땅은 상품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터전이다. 지금의 한국이 땅을 대하는 태도는 시장경제의 전제에서 땅을 거래상품 중 하나라고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터전으로써의 본래 의미를 너무나도 많이 훼손시키고 있다. 주거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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