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반려견, 네게 편지를 쓴다
- 첫 번째 편지. 네게 편지를 쓴다 -
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Mar 6. 2020
너와 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 기적 같은 순간으로부터 흘러내린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밀려오는 물에 몸을 맡기듯 우리는 14년 뒤의 오늘로 쓸려왔다.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느덧 턱 밑이 거뭇거뭇한 서른의, 이제는 청년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나이가 되었고, 자그마한 발로 나의 마음에 생명을 꾹꾹 눌러 담던 너는 지긋한 나이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선선한 공기가 기분 좋던 어느 새벽, 창으로 스며들어온 새벽의 비단 같은 푸르스름함을 덮은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네 모습을 보다 문득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게 만약 나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될 날이 찾아온다면 너는 읽지도 못할 편지를 뭣하려 썼냐며, 차라리 그 시간에 개껌이나 하나 더 던져주지 그랬냐며 나에게 웃어 보일까. 분명 너의 특유의 위세 좋은 짖는 소리로 한껏 웃음을 울려 보이겠지. 그래, 분명 그럴 거야. 너는 기분이 좋을 때는 언제나 ‘왕!’하며 울리는 웃음을 짓는 아이 었으니까.
나도 내가 왜 이 편지를 네게 쓰는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굳이 답을 해야 한다면 우리 사이를 흐른 시간이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을 뿐이라 말하겠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읽을 수 있는 편지를 쓰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너처럼 기쁨을 울림으로 표현하는 법도, 슬픔을 낮게 엎드린 몸으로 표현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군더더기 많은 나의 언어로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는 것뿐이다. 네가 날이 갈수록 현명함을 더해갔던 까닭은 이런 부족한 나를 읽어내야 했기 때문일까. 공간을 부유하는 소리와 언어로 밖에 누군가를 이해할 줄 모르는 나와 다르게 너는 언제나 온몸으로 말하고, 온몸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내가 너의 옆에서 편지를 쓰는 까닭이다. 너는 굳이 하얀 종이위에 찍힌 검은 선들을 이해하기 위해 골몰하지 않아도 표정, 움직임, 소리 나의 모든 것에서 그것들이 담고 있는 것들을 느낄 테니까.
요즘 들어 부쩍 야위어 가는 너를 보며 지금이라도 어서 나의 삶을 너에게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내가 보낸 14년의 시간, 우리는 함께 일 때 보다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닌 내가 너와 함께해주지 못했다. 삶이라는 여러 가지 이유의 핑계들로 나는 네 옆을 자주 떠나고는 했다. 마음에 있지도 않은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너와의 산책 약속을 어겼고, 피곤하다는 이기적인 말로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너를 다시금 쓸쓸한 밤의 어둠 속에 잠기게 했다. 하지만 너는 그런 못난 나의 곁을 한 번도 떠나간 적이 없었다. 술에 취해 비척비척 걸으며 대문을 열던 그날의 새벽에도 너는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뒤로 물린 채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반기고, 따듯한 혀로 내게 사랑을 핥아냈다. 그런 너를 부둥켜안고 취해 갈지자로 흘러내리던 눈물을 나는 기억한다. 나의 돌아오는 모든 길에서 나를 반기던 너에게 나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기적인 존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못난 나이기에 어쩌면 삶의 대부분을 이미 흘려보냈을 네게는 너무 늦었을 지금이라도 사실은 나의 모든 삶이 네게로 이어져 있었음을 고백하려 한다. 너와 나의 추억이,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 겉치레가 되기 전에. 시간이 우리의 곁을 떠나 네가 나의 영원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