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반려견, 네게 편지를 쓴다.

- 네 번째 편지. 사고의 온도 -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때문인지 주말임에도 꽤나 한산한 목욕탕. 샤워를 마치고 발끝부터 가슴까지 욕탕에 나를 밀어 넣었다. 몸 위를 휘감는 따스한 감촉과 넓은 욕탕 위를 유유히 기어 다니는 한산한 햇빛. 오늘따라 욕탕의 물은 평소보다 미적지근했다. 수면 위를 핥듯 솟아오르는 증기의 흐름을 역행하는 나의 의식은 몽롱한 사고의 세계로 가라앉았다.

모든 시공간 개념이 애매한 그곳에서 나는 오로지 몸 위를 넘실거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물의 온도를 느껴보았다. 문득 지금 나의 삶이 미적지근한 물의 온도와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28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이미 예전에 다녀온 군대조차 다녀오지 못한 나. 병무청에 문의하여 미필이기에는 상당히 곤란한 나이인데 자꾸 지원에 떨어져 못 가고 있다 하소연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묵묵한 말뿐이다. 덕분에 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알바와 공부를 하며 한량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하고 미적지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을 부유하는 느낌 속에서 나는 미적지근한 시간의 공백을 조바심과 불안의 덩어리들로 치덕치덕 채우고는 했다.


불쾌하게 달라붙는 미적지근함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번뜩하며 피어오르는 한 줄기 생각을 낚아챘다. ‘그래도 물이 미적지근하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기에는 딱 좋은 온도 아닌가?’ 맞는 말이다. 만약 물의 온도가 뜨거웠다면 치미는 현기증에 금방 욕탕을 나왔을 것이고, 반대였다면 살을 뚫고 스미는 냉기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이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적지근하니 지금처럼 곰곰이 생각도 해볼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그러니 ‘미적지근하다’는 끈적거리는 단어는 나의 몽상의 바다에 가라앉히고 그 빈자리에 ‘사고의 온도’라는 고상한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나를 반기는 너의 유달리 환한 미소. 아침에 가족들이 집을 비우고 돌아올 저녁까지의 공백에 너는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오로지 땅과 하늘, 이따금 너를 골리러 오는 옆집 고양이 외에는 모든 것이 텅 비었을 그 시간을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 그때 너의 티끌 없는 미소가 내게 호통을 친다. “이 어리석은 스물여덟 중생아, 오는 봄이 이토록 만연한데 어디가 비어있다는 것이냐? 후딱 줄 챙겨서 나를 모시고 산책이나 가지 못할까!” 과연 노견의 지혜가 어리석은 주인보다 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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