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반려견, 네게 편지를 쓴다

- 세 번째 편지. 안다미로 -


동이야, 네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너는 바짝 긴장을 한 탓에 집 안 이곳저곳에 소변을 봐놓고는 했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이나 소변을 보고는 했는데, 개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그런 너의 행동에 덜컥 겁이나 혹여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인터넷을 한참 동안 뒤져보기도 하고 너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부모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너는 우리 가족에게 빠르게 적응해 주었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너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한동안 나의 일과가 되었다. 아침에 가족들이 각자의 일터로 떠난 후 혼자 남아 있었을 너에게 안부를 묻고, 너의 시간을 상상해보고, 너의 눈은 어떻게 나를 바라보며, 여물지 않아 연한 앵두 빛의 너의 발이 어떻게 땅을 디디는지 너의 모든 것을 내 안에 담아두려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나는 곤히 잠들어 있는 네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한다. 다쳤는데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곳은 없는지, 혹여나 야위지는 않았는지, 네가 악몽을 꾸고 있지는 않을지. ‘안다미로’,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뜻이다. 동이야 내게는 너의 존재가 그러했다. 네가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 눈을 뜬 아침 네가 어딘가로 가버리지 않고 여전히 내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나의 영혼의 그릇은 차고 넘쳤다. 가끔 그릇이 가득 차 버려 넘칠 때면 흘러내린 것이 유독 짠 바닷물이 되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흘린 눈물의 이유였다.


네게서 생명을 배웠다. 살아서 뜨거운 숨을 뱉는 것만으로,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생명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니, 애당초 사랑받는 것에 필요한 자격 따위는 없다는 것을.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을 믿어온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이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가 많았다. 긍정이라는 말로 고통을 뚫고 웃음을 피워 내보이고, 내 안의 분노를 잠재우고 대가 없는 용서를 입 밖으로 틔우기 위해 끝나지 않을 나와의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나와의 극적인 싸움 끝에 그만 패배해버리고만 날이면 나는 자괴감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설령 승리한 날에도 너덜너덜 해진 몸을 이불속으로 던지고 다시금 아직 꺼지지 않은 내 안의 잔재를 진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야 했다. 나에게 사랑이란 유독 스스로에게는 혹독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를 위한 사랑에는 특정 목적을 위한 예산처럼 언제나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언제부터 인가 나에 대한 사랑은 목표나 목적 따위를 달성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바로 그다음 목표를 향해 눈을 돌려 아직 그곳으로 도달하지 못한 나의 발걸음을 조바심과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책망했다. 당연히 이 목표와 저 목표 사이의 행간에 나에 대한 사랑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타인을 용서하는 것에는 능숙했지만 정작 나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너를 만나고 생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넘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기까지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앉아”하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너에게 답답해하던 내 모습을 네가 떠올린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 신은 바깥을 보는 눈은 만들고, 정작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은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엄한 곳을 탓해 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언제나 진실을 담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있을 자리에서 無를 체험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가끔은 나라는 조건을 비워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여기에 한 줄의 문장을 이어 붙이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도 역시 사랑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오늘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길에 나섰다. 아무 말 없는 거리에 나가 봄을 내리는 따스한 햇빛과 뚜벅 거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을 한껏 품고 그 온기를 조금씩, 조금씩 둔탁한 나의 살결로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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