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반려견, 네게 편지를 쓴다

- 다섯 번째 편지. 글을 기도한다는 것 -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나는 어렸을 적 기도를 하는 손으로 이제는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도를 멈춘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도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기도를 하는 것은 무언가를 소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누군가는 사업의 번창을 위해 기도하겠지만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글쓰기도 기도와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소망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글과 닿은 사람의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경건함이라 부른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듯 글 또한 경건해야 한다. 한때 글의 경건함은 문장의 구성과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마냥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적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유럽에는 유달리 성당이 많았는데 그중 나의 기억을 붙잡고 있는 것은 체코의 한 성당이다. 성당의 안은 찬양소리로 가득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장엄하고 아름다웠던지 듣던 도중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글도 찬양과 마찬가지다.좋은 문장에서는 리듬을 느낄 수 있고, 좋은 표현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글쓰기의 전부라거나 본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 쓰기의 본질은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느냐 즉, 무엇을 소망하는 가에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글이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 가를 끝임 없이 물어야 한다. 물음이 없는 의식은 죽음과도 같으므로.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글을 통해 단순히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언제 있을지 모를 미약한 미래의 영광을 붙잡고 싶을 뿐인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내 안을 비추는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떤 날은 세상의 상처들에 아파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오로지 내 얼굴만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스스로의 참을 수 없는 천박함에 몸부림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소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를 소망해야 한다. 글은 문자로 구성되어 있고 문자는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나라는 옹졸한 점에서 벗어나 점과 점을 이어 타인과에 관계의 선(善)을 만드는 것이다.


기도가 실존을 입증할 수 없는 신에게 드려지는 것이라면 내가 너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종이 위 한 글자, 한 글자에 지금까지 미쳐 다 하지 못한 이야기와 주지 못한 사랑을 점으로 찍는다. 글을 써 내려가며 천천히 변하는 내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너. 맹인이 점자를 더듬어 글을 읽듯이 너는 내 표정을 점 삼아 편지를 읽는다. 동이야, 내 점은 네 점과 이어져 선이 되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늙은 반려견, 네게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