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최근 오랜 기간 정파에 속해있던 질병제일교회(前사랑제일교회)가 사실 독공을 연마한 사파임이 드러나면서 무림에 연신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들의 독공에 당한 사람만 수십,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폐업이 예언된 가게도 수두룩한 상황. 그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들 스스로를 숙주로 한 자살테러라는 것이다. 교계에 대한 민심이 날로 흉흉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회는 경멸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위기를 앞두고 있다. 위기상황은 대상의 본질을 호출하는 법.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좋다.


‘은혜’와 ‘비전’은 오랜 기간 한국 교회의 양적 팽창을 가능하게 한 촉매 역할을 했다. 이들은 사람들의 욕망, 현대 사회의 건조함과 만나며 팽창을 동반한 어마어마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팽창 반응은 비단 교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늘어가는 숫자가 은혜로운 통장, 기업의 글로벌화 비전. 현대 사회에서 은혜와 비전은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욕망의 언어로써 기능하고 있다. 이때 교회가 스스로를 신앙의 공동체로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차이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다년간 외부와 자신의 차이점을 증명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은혜와 비전이 특별해지는 지점은 그 중심에 있는 사랑에 있다. 사랑은 철저히 질적인 개념이기에 은혜와 비전을 단순한 팽창의 개념에서 벗어나 질적 변화로의 도약을 이끌어 낸다. 사랑이 결핍된 모든 것들은 맹목적인 팽창만을 반복한다. 대표적으로 자본의 증식이 그러하다. 목적이 결여된 팽창은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맹목적이다. 그리고 맹목은 아무런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한국 교회의 실태가 딱 여기에 들어맞는다. 언제나 은혜와 비전을 부르짖지만 아무도 그것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니 사랑이 거세된 은혜는 뭔가 신적인 영험함이 담긴 것 같은 주술적인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도들의 영적 게으름을 꾸짖어야 할 성직자들은 성도들을 분열시키면 안 된다는, 시험에 들게 하면 안 된다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 냄새나는 나태를 즐기고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한 용기도 없으니 나태할 수밖에.


사랑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집 없이 떠도는 부랑자, 영혼을 부식하는 자본의 논리에서 사람들을 구할 것이 사랑 이외에 뭐가 있을까. 그동안 한국 교회가 맹목적인 팽창만을 반복하고 있을 때 사랑에 대한 의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가. 사랑은 철저히 질적인 개념이다. 성도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랑이 실현되지 않는다. 사랑이 누구에게, 왜 필요한지 알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때야 비로써 사랑은 실현되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아무런 위험도 자극도 없는 예배당에서 아무리 부르짖고 탄식해봐야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않는 눈물은 위선으로 흘러내릴 뿐이다.


예배당에 걸린 예수의 십자가를 올려다보자. 그는 지금 어디서 사랑을 부르짖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우리를 들여다보자. 우리의 손은 못 자국,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 이번 대규모 감염사태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정당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국 교회 또한 한탄의 자리를 떠나 스스로에게 조치를 취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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