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란 무엇인가?

한창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흥행하고 있을 적 세상은 온갖 종류의 스포일러로 혼란스러웠다. 나 또한 흉흉한 스포일러의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평소 가깝던 지인에게 당한 터라 배신감이 상당했다. 그렇게 깡통 아저씨의 예정된 죽음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리를 지배했다. 본디 영화를 보는 재미란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과 함께 전개를 예측, 해석해보는 것에서 나온다. 이로써 감독이 정한 결말이 운명처럼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저 영상을 눈에 담는 피동성에서 벗어나 나름의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다가올 운명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상상력의 고갈과 함께 나타나는 무기력증으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비싼 영화표가 한순간에 휴지장이 되어버리는 순간, 지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스포일러란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스포일러를 당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하지 않으면 죽음뿐 이라며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매질하던 학원 선생, 대학 못 가면 피눈물 날 거라던 고등학교·재수학원. 다들 아이들에 대해 뭘 그리 잘 안다고 인생이 어떻게 될 거다, 말 거다 떠들어 댔는지. 그런 어른들 덕분에 사회에는 다가올 입시와 취직의 때만을 기다리며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입시· 취직· 노후 세 가지의 앙상한 파트로 나뉜 그들의 삶에서 싱싱한 상상력은 고갈되었고,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건조한 논리만이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불어대고 있다.

인생의 묘미는 죽음 전까지의 삶이라는 하얀 백지 위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맘껏 그리는 데 있다. 자신이라는 물감을 찍어 여기저기 붓을 휘갈겨 보고, 때로 나의 색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색을 바꿔도 보고, 잘 못 그린 부분이 있다면 지우개로 슥슥 지우려고도 해보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야 비로써 인간의 삶은 의미를 얻고, 인생(人生)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있고, 다들 아는 뻔한 결말을 향해 사는 인생은 작품을 그리지 않는다. 그건 이미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라 색을 칠해가는 색칠공부에 불과하다. 고흐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의 이름이 명작으로써 후세에도 전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들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었을까? 재능이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빠른 학습능력을 의미하는 거라면 그런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몇몇의 사람만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시대의 관습이나 인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고흐나 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되자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고유성과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상상력을 품고 살아가기에는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가 너무 많다. 너는 초·중·고 과정을 거쳐서 당연히 대학을 갈 거고, 대학에 가면 스펙이나 쌓아서 취직할 거라고 말한다. 그다음은 적당히 가족을 만들고 고생 좀 하다가 은퇴해서 노후를 즐기면 된단다. 극단적인 소비지향주의나 욜로족의 증가는 소비를 통해서라도 억압된 상상력을 표출하려는 삶의 앙상함에 대한 반작용이다.


사람들의 말라 붙어버린 삶에 싱싱한 상상력을 부어주자. 그들 스스로가 붓을 잡고 삶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자. 자기 인생에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의 앞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무례한 사람에게는 큰 엿을 한 번 날려주도록 하자. 인간에게 스포일러 따위 필요 없다. 인생에 스포일러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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