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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Apr 19. 2022

22. 04. 10 저 높이 우는 매미처럼

 서기 2022년 4월 10일, 오늘은 셰익스피어 사망 이후로 405년 하고도 352일째인, 오전 8시 13분에 이름 모를 새가 3번을 길게 운 유서 깊은 날이다. (잠시라도 인간의 엉뚱함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글이 풍기고 있는 괴상한 냄새를 눈치챘으리라.) 셰익스피어의 죽음은 내게는 400년의 세월만큼이나 멀고 먼, 그야말로 루이 16세의 머리가 기요틴 위에서 극적으로 해방된 사건만큼이나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죽음이란 누구나 거칠 수밖에 없는 불가역적인 통과의례이지 않은가? 만일 셰익스피어가 진실로 인간의 삶을 탐구했던 자라면 자신의 끝을 덤덤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소란스럽지도, 유별나지도 않게. 죽음이라는 새하얀 손을 가진 왕의 부름에 작은 떨림으로 답했을 것이다. 그 숭고함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본인은 그의 죽음을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찬가지 숭고한 뜻을 밝힌다. 그리하여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리라.     


  본인이 셰익스피어의 죽음을 아침에 세 번 새가 운 것과 동등할 정도로 운명적인 사건이라 칭한 이유는 그저 본인이 엉뚱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에서 진리를 발견하려는 유희의 일환이다. 세기의 미인이라 할지라도 거울 앞에서 괴상한 표정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본인도 남들만큼 엉뚱한 사람일 뿐이다.      


  엉뚱함은 자주 상식 없음으로 오인되고는 하는데, 이는 오인이 아닌 정확한 지적이다. 다만, 본인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을 핍박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물건을 사면 딸려오는, 쓸데없이 긴 매뉴얼 같은 것이다. 줘도 읽지 않고, 읽어도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대발견에 대해 생각해보자. 만일 그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정신 나간 소리는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기보다는 상식에 반역의 깃발을 들고, 그 심장의 정중앙을 겨냥하기를 택했다. 당시 상식적인 사람들은 그를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인간이라 치부했을 게 분명하다.     


  본인은 30년에 걸친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상식은 쓸모 있을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귀납적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상식이란 지루하게 반복되고 반복되어, 결국 딱딱하게 굳어버린 삶의 외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매미가 그러하듯, 언젠가 벗어야 할 허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에는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코페르니쿠스처럼 반역에 깃발을 들고 삶의 대발견을 이루어내고 싶다. 설령 반역모의로 인해 지탄받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운명의 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저 높이, 생명의 꼭대기에서 우는 매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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