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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May 21. 2022

교차하는 새벽에 안녕이라 말할게요

2022. 05. 21

  만약에, 만일에, 그랬었더라면 말이에요. 그때 내가 어른스러웠더라면 잔에 담긴 것들을 엎질러 버리지 않았을 텐데, 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후회 없다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빛바랜 사진들을 보면서도 저는 그때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쏟아진 것들이 새겨놓은 탁자의 얼룩을, 젖은 우리들의 손을, 우리 말들의 눅눅함을. 어쩌면 우리의 깨어짐은 운명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그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안녕’이라 말할게요.     


  만약에, 만일에, 그랬었더라면 말이에요. 그때 내가 이기적이지 않았더라면 그대에게 상처 주지 않았을 텐데, 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미련 없다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낡은 노래들 속에서도 저는 그때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처음의 설렘을, 나눴던 영원의 약속을, 이기심의 몸부림을, 우리 끝나던 날을. 어쩌면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일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안녕’이라 말할게요.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내가 그대에게 준 것이 사랑뿐이라 한다면 그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그 외의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 또한 거짓말. 우리 정말 사랑했었네요. 그래서 끝을 맞이해야 했는지도 몰라요. 타오르는 별들마저 영원할 수는 없다고 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요?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들이 그대에게는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에게 받은 상처는 소나기에 씻어버릴 테니까요.     


  지금쯤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엇갈린 우리의 시간은 서로의 사건에 지평선 너머로. 하지만 저는 떠올리고는 합니다. 낮에 헤어지고, 밤에 작별하는 해와 달처럼 영원한 이별, 그것이 교차하는 새벽에서 우리 다시 만나게 될 언젠가를. 우리 이별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 순간을. 설령 만남의 새벽 뒤에 다시 이별의 낮이 온다 해도 두려움 없이 그대에게 안녕을 고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별의 ‘안녕’이 만남의 ‘안녕’이 될 때까지, 만남의 ‘안녕’이 이별의 ‘안녕’과 한 몸이 될 때까지 스스럼없이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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